● 1. '숫자의 열세'가 '존재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996년 7월 수원삼성과의 목동 경기에서 부천 응원단이 수적으로 극심한 열세에 놓여 "겨우 3~4명이 자리를 지키며 안간힘을 써보았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

그러나 이는 부천 서포터의 '멸실'이 아니라, 과도기 속에서도 역사의 불씨를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소수 정예의 실존'을 증명하는 역설적 증거입니다.

3~4명일지언정 그들은 엄연히 부천의 이름으로 스탠드를 지키고 있었으며, 같은 해 4월 기록에는 구단으로부터 북과 징을 지원받고 뿔피리 응원과 플래카드를 통해 1만 관중 사이에서 조직적인 응원 리드를 이끌었다는 명백한 실존 기록이 존재합니다.

● 2. 수원이 흡수한 인적 자원의 뿌리는 결국 '유공'이다 ​상대 진영은 96년 당시 부천 응원단 인원들이 수원의 화려한 마케팅에 매료되어 대거 전향한 점을 들어 부천의 정통성을 깎아내립니다. ​

1996년 8월 27일 자 PC통신 사료는 이 현상의 본질을 정확히 찌릅니다.

"올해 창단한 수원 블루윙즈에서 돋보이는 마케팅을 구사하면서 기존의 축구팬들을 상당수 흡수하는 데 성공했고, 그 기존의 축구팬 중에는 우리 하이텔 축구동호회 회원들도 상당수 포함되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초기 수원이 자랑하는 서포터즈 유입 인력의 상당수는 '부천 유공 팬클럽 출신'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인적 종속성을 보여줍니다.

수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부천이 먼저 일구어 놓은 PC통신 축구동의 인적 자생력을 자본력으로 흡수해 간 것에 불과합니다.

● 3. 암흑기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이어지는 '서포터 정신'의 연속성 ​일부의 이탈 속에서도 부천 스탠드에 남은 지지자들은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었습니다. ​ 1996년 4월 24일 기록에는 "나가자! 부천보라매, 하라쇼! 니폼니쉬" 같은 구단 고유의 응원 구호를 자발적으로 연구하고, 축구동 후원회 자금을 응원 문화 발전에 투자하자는 주체적인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1997년 4월 기록 역시 목동 스탠드에 모여 뿔피리와 대북을 준비하고 팀의 승리를 위해 조직적으로 뭉쳤던 서포터즈의 활동상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