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권 — 부천에서 맨체스터까지, 팀을 잃은 팬들이 걸은 같은 길

누군가에게 축구는 90분의 오락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 축구는 삶의 궤적이고, 지켜내야 할 신념이며, 맨손으로 흙을 파서라도 다시 세워야 하는 집이다. 20대에 직장인 헤르메스라는 작은 소모임에서 서포터의 길을 시작해 붉은악마의 의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랐다가, 버려진 연고지 위에 부천FC 1995를 세운 사람. 오중권의 이름은 한국 서포터 역사의 가장 뜨겁고 헌신적인 기록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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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악마 의장 당시 연고지이전 항의 기자회견 - 사진 중앙]

직장인 헤르메스, 작은 소모임에서

그의 서포터 생활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직장인 헤르메스'라는 작은 소모임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그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 온순하고 중립적이었고, 남의 의견을 끝까지 듣고 나서 집중해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그가 평소 모임에서 곧잘 하던 말이 있다. "축구클럽은 소수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것이다." 훗날 그가 걸어간 길은 이 한 문장의 긴 주석이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

2006년 3월 5일, 그는 붉은악마 의장으로서 독일 월드컵 신응원문화 선포 행사에서 새 응원가를 발표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큰 사랑이 부담이었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마음을 밝혔다. 기아자동차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 대한민국 응원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다.

그해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던 해였다. 2002년 대선에서 정치권의 신경전에 상처를 입은 붉은악마는 집행부를 대의원 체제로 바꾸고 의장이 대외 활동을 하지 않는 원칙을 세운 터였고, 오중권도 개별 언론 인터뷰는 피했다. 단돈 100원의 지출도 대의원회의 의결을 거치게 했고, 임원진의 식대와 해외 답사 비용은 자기 사비로 충당했다.

2월 2일, 상실의 밤

그 한 달 전, 그가 청춘을 바쳐 응원한 팀이 떠났다. 2006년 2월 2일 제주로의 연고 이전이 발표됐고, 전날에도 구단 관계자와 서포터가 "올 시즌 잘해 보자"고 인사를 나눈 터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6시 30분, 부천 팬들은 서포터 사무실에 모였다. 무슨 대책을 세우려는 게 아니었다. 이 상실감을 이해해 줄 사람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같은 팀을 사랑한 동료들뿐이었고, 모임에는 한숨과 담배 연기만 자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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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포터즈 사무실 - 왼쪽 빨간색 점퍼]

하루가 지나자 아픔은 행동이 됐다. 2월 8일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 10일 부천시장 면담, 14일 프로축구연맹과 SK 본사 시위, 3월 1일 앙골라전 시위가 이어졌고, 붉은악마도 연고이전 반대에 동참했다. 그는 국가대표 A매치 스탠드에서 헤르메스 동지들과 X자 마스크를 쓰고 근조 완장을 두른 채 침묵으로 절규했다. 화려한 대표팀 뒤에서 K리그 연고제가 무너지는 아픔을 세상에 알리는 침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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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천타임즈]

2월 19일에는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김문수 국회의원과의 면담이 있었다. 그는 당시 헤르메스 회장, 훗날 창단준비위 사무국장과 구단 대표이사가 되는 서포터 등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고, "부천 서포터는 붉은악마 태생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런 팀이 없어진다면 한국축구의 모체를 잃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구단이 떠난 지 보름 남짓이었다. 항의 서한을 건네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팀을 다시 만들겠다는 선언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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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국회의원 면담 - 우측 3번째]

팀을 만드는 사람들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창단 대행업체를 선정하고 분데스리가 사무국 간부의 방한을 약속받았지만, 부천시의 소극적 태도와 후원 기업 부재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643일이 걸렸다. 그 사이 부천 팬들은 국가대표 경기와 각종 축구 행사마다 '부천' 걸개를 들고 나타났다. 하물며 해외 국가대표 원정경기에도 Forever Bucheon이라는 플랭카드가 걸렸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창단추진위가 배기선 국회의원을 단장으로 이사 15명을 선출했을 때, 그 이름 중에 붉은악마 전국의장 오중권이 있었다. 원래 계획은 운영을 대행사에 맡기고 팬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도가 잇따라 실패하면서 결국 팬들이 스스로 팀을 만들게 되었고, 필요한 자금은 팬들의 십시일반 기부와 노동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부천서포터즈의 힘으로 2007년 12월 1일 오후 2시 30분, 부천시청 대강당에서 부천FC 1995의 창단식이 열렸다.

그가 남긴 숱한 궤적 속에서도, 창단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을 때의 이 한마디는 서포터가 가져야 할 가장 순결한 저항 정신이자 낭만을 보여준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의 역할은 팀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팀을 위해 응원하는, 우리의 본연의 자리였던 평범한 일개의 '서포터'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는 권력을 쥐려 하지 않았고, 자기가 만든 팀의 주인 행세를 하려 하지도 않았다. 클럽은 많은 사람들의 것이라던 그의 말은 구호가 아니었다. 당시 관계자들은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비칠까 봐 가장 경계했고, 자비로 원정 버스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스스로 이름을 앞세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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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첫번째]

정장 대신 작업복을 입은 사무국장

서포터로 돌아가겠다던 다짐은 신생 구단의 현실 앞에서 미뤄졌다. 상주 직원은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무급이었다. 그는 구단 사무국장으로 팔을 걷어붙였고, 첫 시즌을 흑자로 마쳤다. 중동 먹자골목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후원 협약을 맺었고, 첫 시즌 결산 총회에는 8,000만 원의 흑자가 보고됐다.

2008년 3월 22일, 경주시민구단과의 개막전은 비 속에서 치러졌다. 잃어버린 팀의 경기를 다시 본다는 감격에 골이 터지자 눈물을 흘리는 팬이 적지 않았고, 김태륭의 프리킥 결승골로 이기며 '부천FC 1995'라는 이름으로 첫 랄랄라가 울려 퍼졌다.

맨체스터에도 같은 사람이 있었다

바다 건너에도 같은 길을 걸은 사람이 있었다. 2005년 글레이저 가문의 인수 후, 오랜 팬이던 앤디 월시는 시즌권 반납을 요청하는 편지를 손에 쥔 채 올드 트래포드 앞에 한참 앉아 있었다고 한다. 팬들이 만든 새 팀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는 그해 8월 리그 사다리의 맨 아래인 10부리그에서 출발했다. 월시는 클럽이 창단된 2005년부터 총괄 매니저(GM)를 맡았다.

그는 팬들의 커뮤니티 주식 발행으로 구장 건설비의 절반을 모으는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클럽은 새 홈구장 브로드허스트 파크에 입성했다. 그리고 2016년 6월 말 GM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8년 부천에 먼저 손을 내민 것은 같은 아픔을 겪은 영국 AFC 윔블던이었고, 부천은 이후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와도 인연을 맺었다. 2009년 7월 18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두 팀이 마주 섰고, 장대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2만 명이 넘는 팬이 모여들었다. 그때 오중권은 "유맨은 우리의 모델"이라고 말했다. 팀을 잃은 팬이 팀을 만들고, 살림을 맡고, 팀이 서면 자리를 내려놓는 길. 부천과 맨체스터의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걸었다.

다시, 서포터로

2025년 12월 8일, 부천FC는 수원FC를 꺾고 창단 17년 만에 1부리그 승격을 이뤘다. 팀을 잃고 눈물 흘렸던 그 겨울로부터 정확히 20년이었다.

20대에 서포터의 길을 걷기 시작해 붉은악마 의장을 지내고, 한 팀을 만들며 모든 책임과 살림을 짊어졌던 그. 그가 지금의 부천을 바라본다. 그가 심은 작은 씨앗은 이제 1부리그라는 커다란 나무가 되었고, 그때 손에 쥐었던 작은 등불은 온 스탠드를 붉게 물들이는 불꽃이 되었다. 옛날 옛적 집을 잃은 12번째 선수들이 손수 지은 성에서, 오늘도 "랄랄라"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성이 서자 성을 지은 사람은 왕관을 쓰지 않았다. 권력과 명예를 뒤로한 채 그가 향한 곳은 임원석이 아니라 다시 매서운 바람이 부는 서포터석, 늘 이야기해 왔던 평범한 서포터의 자리였다. 가장 뜨거웠던 서포터는 직함을 내려놓음으로써 영원한 서포터로 남았다. 그의 이름은 부천 팬들의 자부심이자, 한국 축구가 기억해야 할 위대한 헌신의 동의어다.

가장 높은 곳에서 순수를 지켰고, 가장 낮은 곳에서 희망을 쌓아 올린 사람. 팀은 떠났지만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부천의 축구는 끝나지 않았다.

당시의 모든 서포터즈들이 했던 말이고 지금도 경기가 끝나고 소주 한잔에 그가 한 이 말:

"아무런 걱정 없이 우리의 팀의 경기를 볼 수 있다는 행복. 세상을 다 쥔 듯한 행복입니다. 이 행복을 부천 시민들과 영원히 같이 했으면 합니다."

참조 기사·자료 링크 (직접 확인한 자료)

연합뉴스(네이트) 2006.03.05, 붉은악마 오중권 의장 신응원문화 선포: news.nate.com

시사저널 2006.03.10, 붉은악마 대의원 체제와 오중권 의장의 인터뷰 회피: sisajournal.com

부천타임즈 2025.12.10, 양주승 칼럼, 창단추진위 이사 명단·2007.12.1 창단: bucheontimes.com

헤르메스 공식 '우리의 역사', 2006년 연고이전 대응·창단·2008~09년 활동: bucheonfc.net

오마이스타 2009.07.19, 부천 vs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star.ohmynews.com

The Non-League Football Paper 2016.03, 앤디 월시 GM 퇴임: thenonleaguefootballpaper.com

FCUM 월시 소개(팬 블로그, 시즌권 편지 일화): fcunitedofmanchester.weebly.com

스타뉴스 2025.12.09, 부천 K리그1 승격: starnewskorea.com

서울신문 2025.12.26, 부천의 기적: seoul.co.kr

경향신문 2005.12.30(참고), 당시 붉은악마 대의원회 의장 인터뷰: 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