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시간이 있다.
1995년 5월 6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하이텔 축구동호회 회원들이 유공 코끼리를 향해 처음으로 조직적인 응원을 펼쳤던 순간과, 1996년 수원삼성의 창단과 함께 기존 팬들의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졌던 순간이다.
이 두 시간을 어떻게 이어 읽느냐를 두고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1995년의 하이텔 축구동호회가 애초부터 특정 팀만을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 아니었고, 구성원 가운데 다른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유공 응원을 현대적인 의미의 ‘서포터즈’로 보기 어렵다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당시 유공을 대상으로 자발적이고 조직적인 응원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프로축구 서포터즈 문화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본다.
이 논쟁을 풀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 질문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서포터즈 문화가 언제 발생했는가’와 ‘오늘날과 같은 단일 클럽 중심의 서포터 문화가 언제 정착했는가’는 같은 질문이 아니다.
먼저 1995년,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다른 최초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하이텔 축구동호회는 "처음부터 유공만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은 아니었다"라는 것이 일관된 주장이다.
당시 회원들은 축구 자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여러 프로팀에 대한 관심도 존재했다. 당시 축구전문기자 김현회씨의 당시 취재를 바탕으로 한 회고에서도 하이텔 축구동의 목적은 처음부터 특정 팀을 지지하는 데 있지 않았으며, 당시 응원문화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유공을 선택해 응원하게 된 과정이 설명된다. 그리고 1995년 5월 6일 동대문운동장에서 깃발과 북을 이용한 첫 단체응원이 이루어졌고, 이후 매주 유공 경기를 찾아가 응원을 이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자료 역시 1995년 하이텔 축구동을 중심으로 한 유공 응원을 헤르메스의 기원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유공의 홈경기뿐 아니라 원정경기까지 응원활동이 확대됐다고 기록한다.
두 주장을 모두 반영해 1995년의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하이텔 축구동호회 전체가 처음부터 유공 단일팀 서포터 조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유공을 대상으로 실제 조직적인 응원활동이 발생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차이는 중요하다.
"1995년의 모든 구성원이 평생 유공(이후 부천 연고)만 응원했느냐"는 질문과, "1995년에 유공을 대상으로 조직적인 서포팅 행위가 존재했느냐"는 질문은 전혀 다른 질문이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난 1996년, 그 구성원들은 갈라졌다
가장 뜨거운 쟁점은 1996년이다.
수원삼성이 창단되면서 1995년 유공 응원에 참여했던 기존 구성원 가운데 상당수가 수원삼성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부천 측 역사자료와 당시 회고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우리의 역사자료를 본다면 젊은 ‘동대문파’를 중심으로 수원삼성 팬클럽으로의 이탈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사료관 자료 참조)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상당수가 이동했다’는 역사적 정황과 ‘정확히 몇 명이 이동했다’는 정량적 사실은 같은 것이 아니다.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으로 전체 구성원 가운데 몇 퍼센트가 수원삼성으로 갔는지를 산출할 수는 없다. 따라서 ‘대부분’, ‘몇 명’과 같은 수치를 단정하기보다는 상당수의 기존 구성원이 수원삼성으로 이동했고, 동시에 "유공에 남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직한 답변일 것이다.
실제 당시 회고에는 기존 구성원 사이에서 “이제 유공 응원은 하지 말고 수원 삼성 응원으로 가자”는 제안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그리고 모두가 떠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역사자료는 1996년 유공 응원단에 비교적 연령대가 높은 소수의 팬들이 남았다고 사료에 기록하고 있다. 동시에 당시에는 ‘하나의 클럽만을 응원한다’는 개념이 지금처럼 확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공만 응원하는 사람, 유공과 수원삼성을 함께 응원하는 사람, 여러 팀을 돌아가며 응원하는 사람이 함께 존재했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 현상은 오히려 당시 서포터 문화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1996년은 하나의 조직이 깔끔하게 해체되고 다른 조직이 탄생한 해라기보다, 새로운 클럽의 등장으로 기존 팬 커뮤니티가 여러 방향으로 분화한 과도기였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조직의 이동은 과거의 존재를 지우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1995년에 유공을 응원했던 사람이 1996년에 수원삼성을 선택했다면,
그 사람의 "1995년은 없었던 일이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1996년의 선택은 1995년의 행위를 소급해서 없애는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팬 커뮤니티가 새로운 클럽의 등장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분화한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1995년 유공을 응원했던 사람이 1996년 수원삼성을 응원하게 된 사실과, 그 사람이 1995년에 유공을 대상으로 조직적인 응원을 했다는 사실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후대의 소속 변화가 과거의 행위를 소급하여 삭제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서포터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문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한 팀만 응원하는 것’이 서포터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규범이 형성되기 이전의 발생 단계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재단한다면, 정작 서포터즈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놓치게 된다.
1995년의 핵심은 완성된 서포터 조직이 존재했느냐가 아니다.
그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팬들이 스스로 경기장에 모여 특정 팀을 대상으로 조직적인 응원을 시작했다는 데 있다.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이 논쟁에서 더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유공에 남은 사람들이다.
1996년 수원삼성으로 이동한 팬들이 있었다고 해서 1995년 동대문 응원이 그 순간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의 역사자료에 따르면 유공 응원단에는 소수의 팬들이 남아 계속 응원을 이어갔고, 목동으로 홈구장이 옮겨진 뒤에도 자발적인 응원은 계속됐다.
이후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면서 조직은 다시 확대된다.
그리고 1997년 12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서포터 규모가 확대되면서 기존의 느슨한 모임을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회의를 거쳐 ‘헤르메스’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결정됐다. 당시 결정사항에는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유니텔 등 PC통신에 헤르메스 게시판을 개설하고, 기존 부천유공 서포터 회장이 헤르메스 회장직을 계속 수행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대목은 상당히 중요하다.
구성원이 바뀌었다는 사실과 조직의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조직은 성장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고, 기존 구성원 일부가 빠져나갈 수도 있다. 이름도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단순히 ‘처음과 나중의 회원이 모두 똑같았느냐’가 아니다.
활동이 이어졌는가, 사람이 연결되었는가, 그리고 그 조직이 스스로 이전의 활동을 계승했는가다.
현재 확인되는 사료에서는 1995년 유공 응원과 1997년 헤르메스 사이에 이러한 연결고리가 확인된다. 특히 기존 부천유공 서포터 회장이 헤르메스 회장을 계속 맡았다는 기록은 중요한 인적 연속성의 근거다.
따라서 이를 ‘완전히 새로운 조직의 탄생’으로만 설명하는 것보다는, 1995년 유공 응원에서 출발한 조직이 1996년의 인적 분화를 거쳐 1997년 헤르메스라는 이름 아래 확대·재편된 과정으로 보는 것이 자료에 더 부합한다.
그렇다면 ‘최초’란 무엇인가
결국 이 논쟁의 본질은 누가 더 순수했느냐가 아니다.
‘최초’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에 있다.
만약 최초의 조건을
«처음부터 하나의 클럽만을 배타적으로 응원하고, 이후에도 다른 클럽을 응원하지 않은 조직»
이라고 정의한다면 1995년 하이텔 축구동호회의 유공 응원은 그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최초의 조건을
«구단과 별개의 자발적인 팬들이 특정 프로축구단을 대상으로 모여 북과 깃발, 구호 등을 이용해 조직적인 응원을 시작한 시점» (유공구단 기사,축구동 후원회장명의 협조문,당대 동영상등)
으로 정의한다면 1995년 5월 6일은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실제로 현재 국내 축구사에서는 1995년 5월 6일 하이텔 축구동호회 회원들의 유공 경기 단체응원을 한국 최초의 서포터 단체의 출발점으로 보는 것이 하나의 통설로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수원삼성이 1996년 이후 단일 클럽에 대한 강한 귀속성을 가진 현대적인 서포터 문화를 발전시키고 정착시킨 역사와, 1995년 유공을 향한 자발적이고 조직적인 응원이 먼저 발생했다는 역사는 반드시 서로를 부정해야 하는 명제가 아니다.
하나는 발생의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정착과 발전의 역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원을 지우는 것과 계보를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
1995년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1996년 수원삼성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숨길 이유가 없다.
오히려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그들은 1995년 유공을 응원했고, 1996년 수원삼성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한국 프로축구 서포터 문화가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의 일부였다.
동시에 유공에 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소수의 상황에서 응원을 이어갔고, 새로운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다시 조직의 외연을 넓혔다. 그리고 1997년에는 헤르메스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정비했다.
그렇다면 계보는 이렇게 읽을 수 있다.
1995년 유공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 응원
→ 1996년 수원삼성 창단과 기존 구성원의 분화
→ 수원삼성으로 이동한 사람들
→ 유공에 남아 응원을 이어간 사람들
→ 복수·타팀 응원을 선택한 사람들
→ 1997년 유공 응원 조직의 확대와 재편
→ 헤르메스의 출범
이 과정에서 어느 한 시점의 이동만을 근거로 그 이전의 활동까지 부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동의 역사는 계보의 분화를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 실제로 존재했던 행위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서포터 문화는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서툴렀고, 사람들은 흩어졌고, 여러 팀을 오가며 응원하기도 했다. 조직은 작아졌다가 다시 커졌고, 그 과정에서 규율이 생기고 이름이 붙었다.
그렇다면 기록해야 할 것은 완성된 결과만이 아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누구의 이동과 잔류를 거쳐 지금의 형태에 이르렀는가 하는 과정 역시 기록해야 한다.
‘최초’라는 말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의 사실은 분명하다.
1996년 이후 누가 어느 팀을 응원했는가라는 사실만으로, 1995년에 실제로 존재했던 유공을 향한 조직적인 응원 자체를 역사에서 지울 수는 없다.
기원은 완성된 결과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원이었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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