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2026-04-11 작성
안녕하세요, 헤르메스 여러분. 무려 15년 만에 인사를 올립니다.
지금은 저를 아시는 분들이 소수이겠지만, 꽤 오랜 시간 부천FC 역사의 중심에서 여러분과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을 여전히 인생의 큰 영광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치 군대 전우처럼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보낸 분들이 몹시 그립습니다. 비록 지금은 타국에 살고 있어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경기장 곁에서 여러분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최근 부천FC의 정체성과 서포터즈의 '원조' 논란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들려오더군요. 30년 전의 일을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며 기록을 내세우는 타 팀의 주장을 보며, 더 늦기 전에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진실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명칭의 정의: '서포터즈'인가, '응원단'인가
1995년 당시 한국 프로축구는 전국 순회 경기와 더블헤더(하루 2경기)가 빈번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특정 팀의 팬이라기보다 축구 자체를 즐기던 평범한 관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은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동일한 색상의 상의를 맞춰 입고 꽃가루를 뿌리며 유공의 깃발을 흔들던 집단, 바로 **'유공 코끼리 응원단'**이었습니다. 당시 언론이나 대중은 이들을 '응원단'이라 불렀지만, 그 본질은 지금의 서포터즈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서포터즈: 팬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조직된 지지 모임 (주체: 일반 팬)
응원단: 관중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한 전문 조직 (주체: 응원단장, 치어리더 등)
당시 하이텔 '축구동'을 중심으로 모였던 이들은 분명 팬들의 자발적인 모임이었습니다. 다만 '서포터즈'라는 외래어가 생소했던 시절이라 언론에서 편의상 '응원단'으로 명명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유공은 응원단이고, 수원이 최초의 서포터즈다"라는 주장은 단어의 껍데기만 본 오류입니다. 유공 응원단은 명백히 한국 서포터즈 문화의 자발적 시작이었습니다.
■ 첨부 1 : 부천팬페이지 미디어 "1995년 9월13일 유공코끼리 응원단" 동영상
■ 첨부 2 : 부천 팬페이지 미디어 " 1995년5월20일 스포츠 조선 유공 하이텔 고정팬 만들기" 기사 참조
사료관 — 1995년9월13일 유공 경기중 찍힌 유공응원단
2. 1996년, 단절이 아닌 '명맥의 유지'
1996년 강제 연고지 이전 정책으로 인해 유공은 부천으로, LG는 안양으로 적을 옮겨야 했습니다. 갓 싹을 틔운 유공 응원단의 주축이었던 '축구동' 인원들도 각자의 연고지로 흩어지게 되었죠.
동시에 창단된 수원 삼성은 프런트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서포터즈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반면 부천은 전용 구장도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목동 시대를 열었습니다. 당시 명준 형님, 양원석 님 같은 소수 인원이 자리를 지켰지만, 규모 면에서 초라해 보였던 건 사실입니다.
유공 구단의 목동 이전과 동시에 팬들 역시 같이 이동해야 했으나 당시 목동운동장의 접근성 및 팬들의 충성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서포터즈의 팬덤을 늘린다는 것은 당시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1996년에 부천 서포터즈는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거창한 세력은 아니었을지언정, 부천 서포터즈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그 명맥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3. 수원 삼성 서포터즈의 역할과 리스펙트
수원 삼성의 프런트가 보여준 마케팅과 서포터즈에 대한 지원은 당시 우리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대형 깃발, 북, 체계적인 응원가는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송출되었고, 이는 한국 축구 팬덤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원 삼성이 한국 서포터즈 문화의 대중화와 정착에 큰 공을 세웠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정착의 뿌리에는 1995년 동대문 운동장에서 시작된 유공 응원단의 실험과 도전이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4. 마치며: 뿌리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1607년 영국인들이 북아메리카로 건너가 거대한 미국을 건설했다고 해서 영국의 역사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피자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미국에서 대중화되었다고 해서 종주국이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 서포터즈 문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공은 '시작'이었고, 수원은 '정착'이었습니다. 시작을 인정하는 것과 이후의 발전을 존중하는 것은 결코 충돌하는 가치가 아닙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리스펙트일 것입니다.
지금의 열정적인 서포터즈 문화를 만들어온 모든 분께 존경을 표하며, 1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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