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2026-04-11 작성

 

​한국에서 '울트라스'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1998년, 그 중심에 부천 서포터즈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또한, G군의 아이디어로 메인 걸개나 게이트 깃발 제작이 시작된 점 역시 인정합니다. 하지만 최근 G군이 작성한 글에서 느껴지는 **"내가 울트라스의 정신을 홀로 심었고, 모든 역사를 주도했다"**는 식의 주장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동료로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1.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흐름

​당시의 환경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92년부터 활동한 일본 대표팀 서포터즈 '울트라 니폰(대표: 우에다 아사히)'의 존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일각에서는 부천의 행보가 그들의 카피가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서포터즈 문화는 PC통신을 통해 해외 자료가 급격히 공유되던 시기였습니다. 메인 걸개나 게이트 깃발 퍼포먼스는 이미 해외나 J리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었으며, 우리가 사용한 응원곡들 역시 대부분 해외 곡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개사한 것이었습니다. 즉, 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해외 문화를 습득하고 이식하던 과정이었습니다.

 

 

​2. 조직적 기여와 공동의 노력

​서포터즈는 결코 일방통행으로 운영되는 조직이 아닙니다. 당시 운영진 체제 안에는 리딩팀이 존재했고, G군뿐만 아니라 수많은 선후배가 동참하여 응원 문화를 만들어갔습니다. G군과 경쟁하며 매 경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던 동료들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서포터석 전체를 뒤덮었던 상징적인 유니폼 통천과 현존했던 가장 큰 메인 걸개는 김도* 씨의 디자인이었고, 한국 최초의 서포터즈 CD 제작 역시 그의 공로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내가 이 서포터즈를 다 만들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후배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경험을 나누었을 뿐입니다.

 

 

​3. 진정한 '울트라스 정신'에 대하여

​울트라스 정신은 결코 거창하거나 과격한 군인 정신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르짖었던 본질은 **"우리는 한 팀을 사랑하고, 선수들이 열정적으로 뛸 수 있도록 맹목적으로 지지한다"**는 서포팅의 기본 원리였습니다.

​한국 최초로 무엇을 도입했다는 사실이 중요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곧 개인의 사유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할 수 있게 지원하고 함께 땀 흘린 사람들 모두가 '울트라스'를 만든 주역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부천 서포터즈는 특정 개인의 힘으로 만들어진 사설 단체가 아닙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동지가 피와 살을 깎으며 지켜온 후배들의 자산입니다. 진정으로 부천 서포터즈를 사랑한다면, 본인의 지분을 내세우기보다 묵묵히 뒤에서 후배들을 격려하는 것이 '대인(大人)'이자 진정한 '울트라스'의 자세일 것입니다.

"내가 다 했다"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했다"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