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2026-05-09 작성
먼저 말씀드립니다.
이 글은 지난 3부에 걸쳐 올렸던 글 이후, G군의 추가 글이 올라오지 않아 한동안 업로드를 미뤄두었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최근 그가 다시 뭔가 문제가 있다는 듯한 뉘앙스의 글을 올리며 원조 논란을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에, 이 시점에 제 생각을 정리해 올립니다.
한 가지만 다시 부탁드립니다.G군의 글에 굳이 반박하거나 대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는 그냥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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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여러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글 재주가 없는 데다, 오랜 시간 온라인 활동을 멀리하다 보니 요즘 세대의 감각과는 맞지 않는 지루한 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기록을 남겨두지 않으면, 몇 년 뒤엔 더욱 왜곡된 기억 위에 한 팀의 역사가 덮여버릴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씁니다.
저는 1995년 동대문운동장에서 유공의 초창기 응원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이듬해인 1996년부터는 유공 서포터즈로 직접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해외에 살고 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부천 서포터즈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원조 논란이 불거지기 전까지는 저도 그냥 넘기려 했습니다. "이런 일이야 늘 있는 거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막상 수십 년 전 자료들을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이건 한두 명의 이야기도, 한두 해의 해프닝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반복될 이야기라는 것도요.
1995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로서, 지금 정리해두지 않으면 이 흐름에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글에서는 먼저 수원 삼성 서포터즈 측의 주장이 어떤 전략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지금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지를 짚어보려 합니다. 왜 잊을 만하면 같은 글과 영상이 반복적으로 올라오는지, 그 흐름을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1단계 — 기점을 먼저 정한다
(The Anchor Point : 닻을 먼저 내리는 자가 기준을 정한다)
1995년 수원 삼성 창단과 함께 결성된 그랑블루를 한국 서포터즈 문화의 실질적 출발점으로 규정합니다. 그 이전의 팬 모임은 'PC통신 친목회' 수준으로 격하시키거나, 팔도응원단으로 초점을 돌립니다. 그리고 자신들만이 조직적 응원가·유니폼·서포터즈 문화를 체계화한 '진짜 서포터즈'라는 논리를 세웁니다.
■2단계 — 용어 자체를 선점한다
(Term Dominance :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문화를 지배한다)
카드섹션, 대형 깃발, 카니발 문화를 국내에 도입하며 '서포터즈라면 수원의 방식이 표준'이라는 인식을 심어갑니다. 다른 팀이 유사한 문화를 펼치면 "우리가 만든 걸 배우는 것"이라는 논리로 조용히 흡수합니다.
■3단계 — 반복 노출로 기정사실을 만든다
(Canonicalization : 충분히 반복된 이야기는 결국 역사가 된다)
구단 역사관, 언론 인터뷰, 다큐멘터리를 통해 '최초'라는 타이틀을 끊임없이 노출시킵니다. 그렇게 '수원 = 한국 응원의 메카'라는 공식이 검증 없이 자연스러운 상식처럼 자리 잡아갑니다.
■4단계 — 경쟁자를 논리적으로 격하시킨다
(Gatekeeping : 문을 쥔 자가 누가 들어올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유공·현대·LG 등 다른 팀의 초기 팬 모임에 대해 "자발적이지 않았다", "지속성이 없었다"는 잣대를 들이댑니다. '자발성'과 '지속성'을 수원만의 기준으로 세우는 방식입니다. 역사 왜곡 논란에서 타국의 기록을 폄하해 자국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방식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5단계 — '최초'를 방패로 현재의 우위를 유지한다
(Hegemony Maintenance : 시작을 독점한 자는 현재도 독점하려 한다)
"우리가 시작한 문화이니 우리가 기준"이라는 태도를 유지하며, 후발 주자의 새로운 시도조차 "뿌리는 우리에게 있다"는 식으로 흡수합니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도덕적·문화적 면죄부처럼 기능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화든, 어떤 정치든, 명칭만 다를 뿐 대부분 이 단계를 밟습니다. 그리고 이 단계를 밟으려면 힘이 필요한데, 수원 삼성 서포터즈는 지금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에 더해 전 부천 서포터즈 콜 리더였던 G군의 '폭로'라는 어이없는 주장까지 덧붙여졌습니다.
5단계를 이미 완성한 위에, 내부 고발이라는 드라마까지 얹은 것입니다.
그들이 이 모든 단계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최초'라는 주장이 흔들리는 순간, 그 위에 쌓아올린 모든 문화적 오리지널리티가 함께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장은 더욱 강해지고, 반박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게 배제됩니다. '최초'를 붙들어야만 강력한 팬덤이 유지되고, 강등이라는 위기를 다른 이슈로 덮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유공의 서포터즈 문화는 '시작'이었고, 수원 삼성 서포터즈의 문화는 '정착'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원래 충돌하는 가치가 아닙니다. 시작이 있었기에 정착이 가능했고, 정착이 있었기에 시작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데 그 '시작'을 지우려는 시도만큼은, 기록으로 남겨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이것이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아마도 이 원조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기록은 남습니다. 그리고 기록은, 결국 말보다 오래 살아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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