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2026-05-09 작성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질문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현재 우리 서포터즈의 공식 명칭인 '헤르메스'가 확정된 것은 1997년입니다.

그렇다면 왜 1995년 활동 시작으로부터 2년이 넘도록 공식 명칭이 없었을까요. 수원 삼성 서포터즈측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명칭도 없었던 모임이 어떻게 서포터즈냐"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당시 공식 서포터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1995년 당시 9개 구단의 공식 서포터즈는 모두 같은 단계를 거쳐 구성되었습니다. 팬 모임이 먼저 꾸려지고, 대표자가 선임되고, 구단 마케팅 프런트와 접촉해 공식 인정을 받은 뒤, 팬서비스·응원 퍼포먼스·언론 지원·응원용품 등을 구단과 협의하는 순서였습니다. 그리고 이 전 과정을 가장 먼저 밟은 구단이 바로 유공이었고, 그 모임이 유공응원단입니다.


명칭이 늦게 확정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초기 운영진의 관심은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팬덤을 키우고 조직의 뼈대를 세우는 것이 먼저였고, 별도의 공식 명칭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 자체가 아직 낯설던 시절이었습니다. 소수의 인원이 서포터즈의 형태를 갖추어가던 그때, 이후 월드컵 열기가 확산되며 팬덤이 불어나고, 그 흐름 속에서 비로소 헤르메스라는 이름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그 역사의 인원의 뿌리가 아직까지 있습니다.)


이름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름보다 먼저 존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논쟁의 본질이 갈립니다.


부천 측이 말하는 '시작'은 서포터즈가 구성되는 과정, 즉 앞서 언급한 단계들이 완료된 시점입니다. 반면 수원 삼성 측이 말하는 '최초'는 공식 명칭까지 모든 것이 완비된 시점입니다. 서로 다른 자를 들고 같은 것을 재고 있으니, 결론이 나올 수 없는 구조입니다.


수원 측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1995년 12월 "하이텔사이버윙즈"라는 명칭이 생겼고, 한 팀만을 서포터하는 모임은 우리가 처음이다." 하지만 1995년 4월, 동대문운동장에서 유공 유니폼을 입고 골이 터질 때마다 꽃가루를 뿌리며 응원하던 그 모습을 보고 일반 관중 중 단 한 명이라도 "저들은 수원 삼성 서포터즈가 될 거야" 혹은 "저들은 팔도 서포터즈야"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압니다. 그들은 누가 봐도 유공의 서포터즈였습니다.
G군이 근거로 내세운 자료 중 하나는 "하이텔의 서포터즈 모임 창단 순번에서 수원 삼성이 최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이텔 모임 개설 자체가 수원 삼성 창단 이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앞서, 구단과의 공식 협의를 거친 서포터즈 구성의 전 과정은 이미 1995년 4월 스포츠조선 기사에 유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원 측이 주장하는 대로 당시 모임이 유공 서포터즈가 아닌 팔도 서포터즈였다면, 그 구성원들이 이후 각자의 팀으로 흩어져 만든 서포터즈 모두가 원조가 되는 셈입니다. 그것이 논리적으로 성립하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우리가 원조를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공식 서포터즈 구성의 전 과정이 자료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원 측이 그 절차의 단 하루라도 앞선 날짜의 자료로 이를 증명할 수 있다면, 우리가 원조를 양보하는 것이 맞습니다.

 


팩트는 단순합니다.


1995년 4월 — 유공 구단과 협의 후 지원을 받아 최초의 자발적 응원 시작 (스포츠조선 기사)
1996년 1월 — 수원 삼성 서포터즈 모임 개설 (하이텔)
이 두 줄이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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