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2026-05-09 작성
원조를 주장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1995년 4월, 제가 직접 유공 구단과 컨택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시절 최초로 구단과 업무를 진행했던 신동일 형님을, 이후 몇 년간 유공 경기가 있을 때마다 경기장에서 직접 뵐 수 있었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선생님을 하고 계셨던 분이라 그런지, 매우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30년 전 기억을 꺼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요 몇 달 사이, 먼지 쌓인 자료들을 하나씩 꺼내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들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시차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들만 추려 적겠습니다.
제가 처음 축동에 가입했던 건 하이텔 PC통신이었습니다. 나중에 유니텔로 옮기긴 했지만. 가입 후 한동안 눈팅만 하다가, 경기장에서 초기 운영진과 처음 인사를 나눈 게 1996년 초였습니다.
솔직히 그날 상대팀이 어디였는지, 경기 결과가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양원석님과 뺀질이 형님께 처음 인사를 드렸던 그 장면만큼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을 부천 축구와 함께했습니다.
이후 1기 운영진을 거쳐 2기부터 서포터즈 회장을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부천 구단과 직접 접촉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지금은 이전했지만 종로 청계천 옆 구 SK 사옥을 수시로 드나들며 미팅을 했고, 김시문 과장님, 이동남 대리님(당시 사원이였나?)과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씩 기울이면서 자연스레 초창기 이야기들을 듣게 됐습니다. 참고로 1995년 당시 구단 측 컨택 창구는 손문옥 국장이었습니다.
그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에는 1995년 구단과 축동의 협의 과정도 있었습니다.
당시 프론트에서 이미 고위층에 보고를 올렸고, 단장 이하 모든 고위층에서 "최선을 다해 지원하라"는 오더가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1995년의 유공은 지금과 달리 비인기 구단이었고, 구단 입장에서는 서포터즈가 그 굴레를 벗어나게 해줄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무척 컸다고 합니다.
그 시절 축구장을 직접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당시 경기장은 그야말로 무풍지대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울트라스 문화가 자연 발생적으로 존재하던 공간이었달까요.
옆에서 술 취한 아저씨들이 욕설과 싸움을 벌이는 건 예삿일이었고, 꽹과리 소리에 치어리더까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온갖 문화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양원석님의 글 참조)
서론이 길었는데,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서포터즈라는 말은 우리가 우긴다고 해서 인정받는 게 아닙니다. 이미 1995년부터 구단 프론트가 마케팅 차원에서 언론 플레이를 했고,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기사와 자료로 남아 있었습니다.
제가 힘들게 자료를 찾기 시작한 것도 사실 그 기사들이 시발점이 됐습니다.
구단 프론트 스스로가 우리에게 "우리의 역사는 1995년부터"라고 알려준 셈입니다.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만약 유공 구단이 그 시절 함께했던 이들이 훗날 수원 서포터즈로 자리를 옮길 걸 알았더라면, 과연 그렇게 적극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까요. 연고지를 버리고 떠난 팀처럼, 구단이 도리어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데, 1997년 이후로 전국서포터즈협의회(붉은악마 포함)라는 단체가 생겨 각 팀 서포터즈 회장단이 한데 모이는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일종의 연합 MT 같은 형태였습니다. 이 단체는 나중에 부천SK 연고지 이전 문제가 터졌을 때 항의 서한과 집회 등으로 우리를 적극 지원해 줬고, 축구 관련 현안이 생기면 함께 논의해서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1997년 이후 이 모임에 몇 년간 참석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원조 서포터즈 자리를 놓고 누군가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당시엔 이미 뉴스와 기사를 통해 "원조 서포터즈는 부천"이라는 게 정론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으니, 굳이 반박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갑자기 이 논란이 불거지는 걸까요. 지금 더 큰 팬덤을 가지고 있고,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역사마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난 30년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던 이 역사가, 팬덤의 크기가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이 지키는 것이고, 저는 그 기억을 가진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역사를 앞으로도 계속 간직하고, 지켜나갈 것입니다.
댓글 0
댓글 작성은 로그인 · 가입 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