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붉은악마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큰 분기점이라면 누가 뭐라고 해도 1997년 9월 28일 열렸던 이른바 '도쿄 대첩' 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에 '서포터 문화'가 자리잡는 결정적인 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축구응원문화 아니 스포츠응원문화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런 붉은악마의 첫 해외원정은 성공적으로 이뤄졌지만 사실 이 부분은 축구협회의 엄청난 지원이 있었습니다.

사전 준비팀이 경기 며칠전에 미리 가 있었고 그 이전부터 일본을 다녀오며 일본쪽의 숙소 준비, 버스대절 등을 통해 50여명의 원정팀이 성공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반성할 부분들도 나오고 했습니다.

 

1998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에서 붉은악마의 공식적인 해외원정은 도쿄대첩 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홈&어웨이로 치뤄지는 경기에서 당시 전 경기를 따라다니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개인적인 자격으로 가신 분이 계실 수 있지만 공식적으로 사람들 모아서 간 것은 그 경기가 유일했습니다.

 

'도쿄대첩'이 성공적으로 끝난 만큼 당연히 프랑스월드컵 본선에 대한 욕심이 안생겼다는 것은 거짓말일 겁니다.

당시 붉은악마 회장도 도쿄대첩이 끝나자마자 '야! 본선진출하면 당연히 프랑스 가야지! 안간다는게 말이나 돼?' 라며 지역예선 끝나기 전부터 의욕적이었고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마자 프랑스원정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비용만 따져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프랑스 월드컵은 1990년, 1994년 월드컵 과는 달리 한 날에 한 조의 경기가 모두 치뤄지지 않은 최초의 대회였습니다. 뭔 소리냐고요? 1990, 1994 월드컵은 한조 4팀의 2경기가 한날에 치뤄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에 2개조의 4경기가 한방에 치뤄졌습니다.
1990년에는 한국 시간 기준으로 00시에 1조의 2경기가 다 치뤄지면 04시에 2조의 2경기를 치루는 식으로 하루에 4경기를 치뤘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월드컵부터는 00시, 02시, 04시에 한경기씩 치루는 식으로 해서 하루에 3경기를 치루는 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만 하루 4경기를 치뤘습니다.


 

이러다보니 조예선 3경기를 치루는 기간이 10일로 늘었습니다. 거기다 당시 20만원 중-후반 대였던 한국-일본 왕복비행기와 달리 유럽은 직항편이 100만원대였습니다(KAL, 아시아나 라는 국적기 사용하면 이코노미라도 120-130만원대...-_-)
아무리 예산을 짜게 잡는다 해도 200만원은 그냥 넘어갑니다. 거기다 이동수단까지 생각하면...네 그냥 250만원 넘어가는 거였습니다.

당시 250만원이면 지금이면 얼마인지...
금융권에 다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1998년의 250만원이면 2026년 현재로 보면 450만원-500만원이라 보면 될거라더군요.
워메...500만원이었다니 그때 진짜 돈 들어갔구나...


1997년 월드컵 예선 기간중에 대한민국을 강타한 것이 IMF였습니다.

이때 환율 얼마나 올랐냐면 최근과 비슷한 정도였습니다.
100엔당 600원 정도 하던 환율이 1997년 겨울 직전엔 100엔당 1000원이 넘어갈 정도...즉 2배 가까이 뛰어버렸던 때에요. 도쿄대첩때와 단순 비교를 해도 예산 2배 잡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환율이 두배로 뛰었으니까요.

 

1997년 도쿄대첩으로 인해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고는 해도 그때의 붉은악마는 2002년과 같은 기세가 아니었습니다. 아니 2002년에도 나름 허리띠 졸라매며 그 성공을 만들었던 것이라는걸 잊으면 안됩니다. 당시 운영진들 진짜 고생 많았습니다.
언제 다른 자리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2002년에도 공식 스폰서들이 붉은악마를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에 대한 스폰서 비용을 엄청나게 후려치려고 해 댔습니다.


2002월드컵이 끝난 후당시 SKT의 마케팅 총책임자가 관련 책을 남기면서 책 내용에 
'효과에 비한 다면 정말 적은 비용만 나갔다'라고 쓰고 뒤에서는 'X값정도에 불과했다'라고 했을 정도로 돈 적게 주고 대박난 마케팅 했다고 신나는 결산을 한 SKT보다 더 후려치고 자기들 뜻대로 마케팅 안해줄 거 같으니 사람 취급도 안한게 '월드컵 공식 스폰서' 업체들이었습니다.

저도 그 속내용을 듣고 '와 씨발 KT... 껌값도 그리 주기 싫었냐? XXX들' 소리 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2002년에도 이랬는데 1998년에 지원요? 지원은 꿈도 꾸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하나 풀어나가면서 그 X고생이 시작됩니다.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