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터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경기장에 서는 의지다

서포터란 무엇인가. 흔히 수천 명이 펼치는 티포, 물결처럼 출렁이는 응원가, 화려한 유니폼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지금 소개할 3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단 한 명이 응원했을 때, 그것은 서포팅인가 아닌가.

① 고양시민축구단 — "나라도 응원해야 선수들이 응원 소릴 듣는다"

K3리그 고양시민축구단 서포터즈 단장 라대관 씨는 당시 단 3명의 서포터즈를 이끌었습니다. 원정 경기에서는 사실상 혼자였고, 다른 인원은 수험생과 구단 사무국장뿐이었습니다.

"저마저 떠나면 선수들이 아예 응원 소릴 듣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라도 선수들 사기를 북돋아 주자'는 생각으로 남았죠."— 엠스플뉴스, 2018.09.07

그는 팬이 떠나는 와중에도 경기장을 지켰습니다. 단순히 선수들이 응원 소리를 듣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경기 운영을 돕는 헌신이 바로 서포터의 본질입니다.

② 경남FC — 5시간을 운전해 속초로 간 단 한 사람

2015년 5월 18일, K리그 챌린지 경남 FC강원 FC 경기. 당시 경기장은 732명의 관중만 있었고, 경남 응원석에는 단 한 명의 서포터만이 있었습니다.

"서포터들에겐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했지만, 경남을 응원하는 서포터가 한 명도 없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엠스플뉴스, 2019.02.01

당시 경남은 리그 최하위였고, 팬들은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홍광욱 씨는 창원에서 속초까지 4~5시간 운전해 혼자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너와 나의 뜨거운 역사를 위하여'라는 걸개를 펼치고, 텅 빈 관중석에서 목이 터지도록 응원했습니다.

결과는 1대 0 극적 승리. 선수들은 경기 후 달려와 그를 안아줬고, 이후 경남은 2017년 K리그2 우승과 1부 승격을 달성했습니다. 혼자였던 응원석이 역사의 씨앗이 된 사례입니다.

"만약 저마저 경기장에 없었다면 선수들은 그러려니 했을 겁니다. 저 '혼자'였기에 선수들이 깨달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엠스플뉴스, 2019.02.01

③ 부천FC — 척박한 맨땅에서 시작한 역사

부천FC의 초기 서포터즈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1995년, 동대문 유공 경기장에서 깃발 하나 들고 홀로 서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시작이었습니다.

인원은 적었고, 외로웠지만 그 한두 명의 목소리가 모여 지금의 부천 서포터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구단은 자본이나 인프라 지원이 거의 없었고, 서포터들은 순수한 열정과 의지로 스탠드를 지켰습니다. 1995년 9월 13일 KBS 뉴스에도 동대문 유공 응원석의 조직적 스탠딩과 대북 리딩이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스탠드를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부천 서포터의 정통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숫자가 적어도, 혼자였더라도, 그 헌신은 지워질 수 없습니다.

④ 결론 — 숫자가 아닌 의지, 헌신

🔹 단 1명이라도, 조직이 작더라도
🔹 경기장에 나가 팀을 위해 서 있는 순간,
🔹 그 자체가 서포터의 본질이며 역사입니다.

일부는 숫자의 많고 적음으로 서포터를 재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서포터는 수치가 아니라, 스탠드에서 보여준 헌신과 의지로 평가됩니다. 고양, 경남, 부천,K2,K3등의 사례가 그 증거입니다.

모든 소수의 서포터즈에게 리스펙을 보냅니다.

📰 참고 기사

더게이트(THE GATE) · 엠스플뉴스

'나홀로 서포터즈' 단장 "나라도 응원해야 선수들이 응원소릴 듣는다"

박찬웅 기자 · 2018년 9월 7일 · 고양시민축구단 울트라스맥파이 서포터즈

더게이트(THE GATE) · 엠스플뉴스

'강원전 나홀로 서포터' 홍광욱 "너와 나의 뜨거운 역사를 위하여"

박찬웅 기자 · 2019년 2월 1일 · 경남FC 서포터즈 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