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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CHEON FOOTBALL CLUB 1995 — HISTORY ARCHIVE

[논점분석] 동일한 출발점, 서로 다른 평가 기준에 대하여

부천 서포터즈 아카이브 · 2026.05.28
※ 아래 인용 문구는 수원삼성 서포터즈 측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직접 인용하고 게시한 기록물의 실제 문구입니다.

수원삼성 서포터즈 측은 1995년 동대문 유공 응원석의 역사를 서포터즈의 시작으로 인정하지 않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시해 왔습니다.

"1995년 하이텔 축구동은 특정 팀에 대한 소속감 없이 여러 팀을 섞어 응원하던 '팔도 유랑단'이자 '프로젝트 모임'이었을 뿐이므로, 진정한 서포터즈의 시작이라 볼 수 없다."

이 논리는 수원삼성 서포터즈 측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설명할 때 핵심 근거로 제시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논리를 수원삼성 서포터즈 스스로가 남긴 기록물과 함께 놓고 보면 흥미로운 모순이 발견됩니다. 아래에서 그 지점들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모순 ① : 같은 사람인데, 평가가 달라지는 지점

수원 측이 근거로 제시한 칼럼의 논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995시즌 당시 하이텔축구동호회의 단체 관람은 '새로운 응원문화의 창출'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운동장에서 실현하기 위해 각 팀의 팬들이 연합하여 결성된 프로젝트성 모임이었을 뿐 한 팀에 대한 소속감과 충성심을 가지고 그 팀의 승리를 바라는 응원활동은 결코 아니었다. 서포터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바로 팀에 대한 소속감과 충성심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1995년 하이텔 축구동호회가 최초의 서포터 조직이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다." — 수원 측 인용 칼럼 중

이 논리대로라면 95년 동대문 유공 스탠드에 모였던 사람들은 특정 팀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팔도 유랑단'이므로 서포터즈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당시 유공 응원석 현장을 주도했던 수원 서포터즈 창립 주역의 회고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저 원정 응원단 4명 중 3명은 나중에 수원 서포터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중략) 당시 같이 유공을 응원했던 울산 분들은 나중에 처용전사를 만들었고 포항의 그 팬들은 포항 서포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수원 서포터를 만들었습니다. 모두 95년 하이텔 축구동 멤버들이 해낸 일입니다." — 수원 서포터즈 창립 주역 회고록 중

여기서 논리적 긴장이 발생합니다. 수원 측 주장대로라면 95년 축구동은 소속감·충성심이 부족해 서포터즈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집단인데, 그 집단의 원정 응원단 4명 중 3명이 그대로 이동해 수원삼성 서포터즈의 시초를 이루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성원이 바뀐 게 아니라, 95년 동대문에서 대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며 초기 서포팅 방식을 익혔던 이들이 96년에 응원 대상만 수원삼성으로 옮긴 것입니다.

같은 사람들을 두고 "유공을 응원할 때는 충성심 없는 유랑단이라 서포터가 아니고, 수원삼성을 응원할 때는 최초의 서포터즈"라고 평가하는 것은 일관성이 부족한 이중 기준으로 보입니다. 같은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유랑단 출신들이 결성한 수원 서포터즈의 초기 정통성 역시 같은 논리로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모순 ② : 구단의 지원,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지점

수원삼성 서포터즈 측 칼럼은 유공 구단이 축구동에게 북을 지원하고 협조했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축구동호회와 유공 구단간의 관계가 한계점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축구동호회를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치어리더를 위한 응원집단의 존재쯤으로 생각하는 유공 구단의 인식이었다. (중략) 결국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서 시작된 협조 관계였지만 다양한 팀을 좋아하는 팬들이 모인 탓에 팀에 대한 충성도는 희박했고 구단 역시 자발적으로 구성된 팬들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 수원 측 인용 칼럼 중

구단의 지원을 받거나 이해관계가 맞물린 응원은 자발성이 부족하다는 논지입니다. 그런데 수원삼성 서포터즈의 기록을 보면, 95년 말 수원 구단 관계자가 축구동 송년회에 찾아와 대기업의 자본력과 "유럽식 클럽 운영, 성인층 겨냥 마케팅"을 제안하자 축구동 인재들이 대거 수원삼성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수원삼성 측으로부터도 상당한 지원과 혜택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구단과 조율하고 지원을 받은 사례를 두고, 유공의 경우는 "충성도 낮은 협조 관계"로 서술하면서 수원삼성의 경우는 "선진 마케팅에 의한 서포터즈의 탄생"으로 서술한다면, 같은 기준이 서로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수원삼성의 창단 과정 역시 "구단 마케팅의 영향을 받은 응원단"으로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모순 ③ : 구성의 다양성, 어느 쪽에는 적용되고 어느 쪽에는 적용되지 않는 지점

수원삼성 서포터즈 측 칼럼은 당시 동대문 응원석의 인원 구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당시 단체관람 응원에 참가하는 회원들 중 '황선홍 홍명보 라데'가 소속되어 있는 포철 아톰즈를 좋아하는 회원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중략) 유공과 포철과의 경기에서는 유공의 홈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동호회 인원들이 반으로 갈려 유공 구단에서 지원한 북 두 개 중 한 팀은 유공을, 나머지는 포철을 응원했다." — 수원 측 인용 칼럼 중

유공 팬들만의 모임이 아니었으므로 부천의 단독 역사로 보기 어렵다는 논지입니다. 이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당시 유공 응원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포철 팬들이었고, 95년 당시 수원삼성이라는 팀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유공 팬들만의 모임이 아니었으니 부천의 단독 정통성이 아니다"라는 기준을 세우면서도, 같은 시기 같은 응원석에서 시작된 서포터 문화의 유산을 자신들만의 것으로 제시하는 것은 같은 기준을 서로 다르게 적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순 ④ : 기원은 인정하면서 자격은 인정하지 않는 지점

수원 측이 제시한 칼럼의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습니다.

"당시 하이텔 축구동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축구응원은 엄청 늦게 도입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의 획기적인 응원방식이 없었다면 아직도 축구장에는 응원단장과 치어리더 엠프 응원이 진행됐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이 있기에 저희만의 응원방식이 생겼고 이들이 있기에 대한민국 축구도 발전된 것 같습니다." — 수원 측 인용 칼럼 중

이 서술은 1995년 동대문 유공 응원석에서 대북, 대형 깃발, 두루마리 휴지 응원 등 초기 서포팅 방식이 정립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응원석에서 방식을 익힌 이들이 96년 각 구단 서포터즈로 흩어지며 K리그 서포터 문화가 확산되었고, 수원삼성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유공 응원석의 방식과 인력을 이어받은 사례 중 하나입니다.

축구동의 응원 방식이 지금의 자신들에게 이어졌다고 서술하면서도, 그 방식이 형성된 무대인 '유공 응원석'은 서포터즈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서술로 보입니다.

"우리의 시작도 이러했다" — 초기 역사에 대한 리스펙

수원삼성 서포터즈 관계자의 글에는 당시의 척박했던 환경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단 4명이 대북을 들고 고속버스로 울산과 포항을 오갔던 기록입니다.

"모인 인원은 총 4명. 고속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떠났죠. 네 명이서 그 큰 북을 들고 버스 타고 울산까지 갔습니다. (중략)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있어도 뭉치지 않을 수 없는 때였고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팀의 상대편을 응원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죠?" — 수원 서포터즈 창립 주역 회고록 중

이 기록을 읽으며 마음이 많이 움직였습니다. 그 외롭고 척박했던 초창기의 모습이, 얼마 전까지의 부천의 모습과 정확히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맨땅에서 깃발 하나 들고 동대문 스탠드에 섰던 그 시절, 저희 역시 인원이 적었고 외로웠습니다. 그 시절 스탠드를 지켰던 모든 개척자들에게 진심 어린 존경을 보냅니다.

서포터즈의 본질은 규모나 자본의 크기가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스탠드에 서는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며

수원삼성 서포터즈 측이 제시한 기록들은 서포터즈 문화의 뿌리가 95년 하이텔 축구동에 있으며, 그 축구동이 95년 동대문에서 유공을 응원하며 활동 기반을 다졌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출발점이 유공을 응원하던 집단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기록을 제시하면서도, "그 시기는 서포터즈가 아니었다"고 구분 짓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않은 서술로 보입니다.

저희가 "서포터 문화의 시작이 1995년 동대문 유공 응원석에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근거는 저희만의 주장이 아니라, 수원삼성 서포터즈 측이 직접 인용하고 남겨둔 기록들이 함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 관련 사료 및 원문 링크

Bucheon FC 1995 History Archive · history.bucheonfc.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