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주관적인 '개인의 기억'이나, 사후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해 급조된 '자의적 기준'으로 재단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오직 그 시대의 공기와 온도를 있는 그대로 박제한 '당대의 1차 사료'에 의해서만 증명되고 선언됩니다.

최근 수원삼성블루윙즈의 서포터즈 블로그에 게재된 한 전직 안양 서포터즈 관계자의 글은, 부천의 1995년 자발적 서포터즈 태동을 지워버리기 위해 매우 정교하게 기획된 오류이자 왜곡입니다.

해당 글이 내세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서포터즈 정의'의 모순과 사료적 거짓을 낱낱이 밝혀, 대한민국 축구 서포터즈 문화의 진정한 뿌리가 어디인지를 다시 한번 명확히 선언합니다.

사료에 박힌 활자와 진실은 결코 거짓 프레임으로 가릴 수 없습니다.

1. 출처 불명, 생전 처음 들어보는 '서포터즈 4대 정의'의 오만과 독선

해당 글의 작성자는 한국 최초의 서포터 단체를 규정하겠다며

(1) 다수가 아닌 단수, 즉 단 하나의 클럽을 지지하는 단체.

(2)악기를 동원하고 깃발이나 여러 도구를 이용해 노래와 육성으로 경기장에서 90분 동안 자발적인(구단에서 고용한 '응원단장' 없이)인원이 모여 한 클럽을 응원하는 단체.

(3)홈, 어웨이를 불문하고 경기장을 찾아 2번과 같은 방식으로 응원하는 단체.

(4)단발성 혹은 이벤트성 응원이 아닌, 시즌을 관통하는 지속적 응원 단체.

이라는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단순한 네 가지 요건은 도대체 '어디서' 규정한 것입니까?

피파(FIFA)나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공식 규정입니까, 아니면 전 세계 축구학계가 공인한 정설입니까?

축구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출처 불명의 '사설 기준'은, 결국 1996년에 태동한 자신들의 역사적 포지션을 시초로 둔갑시키기 위해, 1995년 부천의 선구자적 활동만 쏙 빠져나가도록 사후에 교묘하게 설계한 '자가제조식 덫'에 불과합니다.

신생아에게 특전사 군장을 매기고 100km 행군을 해야 인간으로 인정하겠다는 식의 이 조잡한 가이드라인은, 당대 사료와 팩트 앞에 완벽히 무너집니다. 부천의 선구자적 활동만 쏙 빠져나가도록 사후에 교묘하게 설계한 '짜 맞추기식 덫'에 불과합니다.

​◼︎ '단일 클럽 지지'와 '지속성'의 오류: 본질과 규모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궤변

​상대방은 1995년 유공의 응원을 'PC통신 축구동호인 연합의 이벤트성 응원'으로 격하하려 합니다.

그러나 1995년 당대 일간지(경향신문 등) 사료는 명백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PC통신이라는 공간을 통해 연락망을 구축했을 뿐, 활동의 목적지는 철저하게 '유공 코끼리'라는 단일 클럽이었습니다.

​당대 기사는 이들이 유공의 승리를 위해 스탠드를 조직적으로 선점하고 시즌 내내 지속해서 뭉쳤음을 증명합니다. 95년 유공 응원석의 규모가 96~97년의 수원삼성이나 안양보다 작았을지언정, 지지의 대상(유공)과 지속성이라는 본질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태동기의 규모가 작았다는 이유로 그 본질이 '서포터즈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것은, 유년기의 역사를 통째로 지워버리겠다는 반(反)역사적 독선입니다.

​◼︎ '악기·깃발 동원'과 '원정'의 요건: 문화의 '씨앗'과 '열매'를 전도한 인과오류

​악기가 늘어나고 대형 깃발이 제작되며 전국 원정 버스가 대절되는 것은, 서포터즈라는 유기체가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세력 확대의 결과물(열매)'이지, 서포터즈 여부를 판가름하는 '진입 장벽(씨앗)'이 될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어느 축구 클럽의 서포터즈도 창단 첫날부터 완벽한 물품과 수천 명의 대오를 갖추고 시작하지 않습니다. 소수의 팬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으는 단계(1995년)가 있어야, 비로소 깃발도 늘어나고 원정 규모도 커지는 단계(1996~1997년)로 진화하는 법입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수준의 깃발 개수와 원정 횟수가 아니라고 해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95년의 선구자들이 뿌린 씨앗 덕분에 96년의 자신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는 인적·문화적 인과관계를 통째로 부정하는 배은망덕한 논리입니다.

​◼︎ '자발성과 독립성'의 요건: 관제 응원과의 완벽한 결별

​서포터즈를 규정하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외래어 명칭의 선점이나 깃발의 숫자가 아니라 '구단(자본)으로부터 독립된 팬 주권의 실현'입니다.

​1990년대 초 구단 주도로 구단 직원이 직접 메가폰을 쥐고 지휘하며 관객을 동원하던 '구단 종속형 관제 조직'의 문법을 대한민국 축구사에서 최초로 거부한 주체가 바로 1995년 유공 코끼리의 스탠드였습니다. 오직 팬들의 순수한 비용과 열정으로 주체적인 응원 문화를 창조해 냈습니다.

​구단 프런트의 전폭적인 마케팅 지원과 공조 속에서 덩치를 키웠던 수원삼성의 초기 모델과 비교했을 때, '자발성과 구단으로부터의 독립성'이라는 서포터즈의 진짜 본질에 더 완벽하게 부합하는 선구자는 명백히 1995년 유공의 지지자들이었습니다.

1995년 유공 스탠드는 명백한 단일 클럽 지지체였습니다. 당대 일간지(경향신문 등) 사료는 명백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PC통신 축구동 속에서 모였으나, 철저하게 '유공 코끼리'라는 단일 클럽의 정체성과 자신들을 완전히 일치시켰습니다.

2. "언론 명칭과 초대 회장" 프레임이 자멸할 수밖에 없는 이유 (자가당착)

해당 안양 관계자는 1995년 유공 응원이 당대 언론에 '응원단', '팬클럽'으로 적혔고, '헤르메스'라는 공식 단체명과 초대 회장 체제가 확립된 시점이 1997년이므로 최초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1990년대 대한민국의 언론 환경과 서포터즈 문화의 발전 계보를 완전히 무시한 명칭 만능주의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까지도 '서포터즈'는 언론의 표준어가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메이저 언론들은 국어 순화 기조와 대중적 이해를 돕기 위해 외래어인 '서포터즈(Supporters)'라는 단어의 단독 사용을 극도로 꺼렸으며, '축구 응원단', '동호인 응원단'으로 번역해 보도했습니다.

가장 대중화된 서포터즈 조직인 '붉은악마'조차도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당대 신문 지면에서 끊임없이 '축구 국가대표 응원단 붉은악마'로 표기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그토록 신성시하는 수원삼성의 그랑블루 역시 1996년 창단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언론 기사에서 '수원삼성 응원단', '수원 사이버 응원단'으로 수없이 명시되었습니다.

상대방의 논리대로 '언론에 응원단으로 적히고 공식 명칭과 회장 체제가 확립되지 않으면 서포터즈가 아니다'라는 해괴한 기준을 적용하면, 2002년 월드컵 때까지 응원단으로 불린 붉은악마도 가짜요, 2000년대 초반까지 수원 응원단으로 대서특필된 수원삼성의 그랑블루 역시 서포터즈가 아닌 단순 응원단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정통성을 스스로 처단하는 명백한 '자가당착'입니다.

3. "본 적이 없다"는 개인의 빈약한 기억과 붉은악마 모태론의 실체

개인의 주관적 기억은 객관적 사료를 이길 수 없습니다

글쓴이는 "96~97년 동안 안양의 홈경기에서 유공 서포터를 본 기억이 전혀 없다"며 본인의 기억을 절대적 진리인 양 내세웁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주관적인 목격담은 도서관 지면 아카이브에 날짜와 면수까지 명백히 박혀 있는 당대의 인쇄 사료를 이길 수 없습니다.

본인이 보지 못했다고 해서 1995년부터 자발적으로 응원을 하고 대북을 치며 동대문과 목동운동장의 유공 서포터즈의 활약과 사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붉은악마 태동의 진실: 1995년 유공 응원석의 유산이 뿌리였습니다

글쓴이는 1997년 8월 중국전 걸개 제작을 언급하며 부천 모태론을 부정하려 하지만, 붉은악마의 핵심 계보는 1995년 동대문 유공 스탠드에서 자발적 서포팅의 문법을 최초로 정립하고 리딩을 학습했던 PC통신 축구동 인력들이 국가대표 응원단(붉은악마)의 결성을 주도하고 초기 기틀을 닦았다는 사실입니다.

1997년 공식 걸개가 걸리기 이전, 자발적으로 뭉쳐 축구 문화를 바꾼 '인적 씨앗''문화적 문법'이 어디서 발아했는가를 본다면, 그 뿌리는 명백히 1995년 유공의 스탠드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4. 단어의 껍데기를 버리고 진실의 스탠드로 오십시오

'서포터즈'라는 외래어 단어는 특정 구단이 수입해 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등록상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클럽을 지지하고 사랑한 팬들의 독립적 주권 행위를 뜻하는 '보통명사'일 뿐입니다.

그랑블루가 '수원삼성 응원단'으로 불리던 시절이나, 붉은악마가 '대표팀 응원단'으로 불리던 시절이나, 우리 유공의 지지자들이 '동호인 응원단'으로 불리던 시절이나, 구단으로부터 독립하여 팬들의 비용으로 문화를 창조한 '자발적 지지자'라는 본질은 하나였습니다.

구단 직원의 메가폰 리딩으로 대변되던 80~90년대 초의 관제 응원 문화를 완전히 끝장내고, 대한민국 프로축구 역사상 최초로 자발적 서포팅의 본질을 실행한 공간은 명백히 "1995년 유공 코끼리"의 스탠드였습니다.

사료에 박힌 활자와 진실은 결코 거짓 프레임으로 가릴 수 없습니다.

출처 (해당 글)
https://m.blog.naver.com/frente_tricolor_/224247533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