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CHEON FOOTBALL CLUB 1995 — HISTORY ARCHIVE

부천 서포터즈 아카이브 · 2026.05.31

역사는 개인의 기억이나, 특정 시점의 필요에 따라 새롭게 정리된 기준만으로 재단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근거는 그 시대에 직접 기록된 1차 사료입니다.

최근 수원삼성블루윙즈 서포터즈 측 블로그에 게재된 한 게시물에서, 1995년 부천(당시 유공)의 자발적 서포터즈 태동을 인정하지 않는 취지의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해당 게시물이 제시한 '서포터즈의 정의'가 사료와 어떻게 배치되는지를 짚어보고, 대한민국 서포터즈 문화의 뿌리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새롭게 제시된 '서포터즈 4대 정의'의 근거

해당 게시물에서는 서포터즈 단체를 규정하는 기준으로 다음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1) 다수가 아닌 단수, 즉 단 하나의 클럽을 지지하는 단체.

(2) 악기를 동원하고 깃발이나 여러 도구를 이용해 노래와 육성으로 경기장에서 90분 동안 자발적인(구단에서 고용한 '응원단장' 없이) 인원이 모여 한 클럽을 응원하는 단체.

(3) 홈, 어웨이를 불문하고 경기장을 찾아 2번과 같은 방식으로 응원하는 단체.

(4) 단발성 혹은 이벤트성 응원이 아닌, 시즌을 관통하는 지속적 응원 단체.

이 네 가지 요건은 어떤 공식 기구나 학술적 정설에 근거한 것인지 출처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FIFA나 AFC의 공식 규정, 혹은 스포츠 사회학계의 정설에서 이런 기준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출처가 뚜렷하지 않은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1996년 이후 형성된 조직은 요건을 충족하는 반면, 1995년 부천의 초기 활동은 요건에서 제외되는 구조가 됩니다. 이 기준이 어느 시점,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 '단일 클럽 지지'와 '지속성' 요건에 대하여

해당 게시물은 1995년 유공의 응원을 'PC통신 축구동호인 연합의 이벤트성 응원'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1995년 당대 일간지(경향신문 등) 사료는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PC통신이라는 공간을 통해 연락망을 구축했을 뿐, 활동의 대상은 '유공 코끼리'라는 단일 클럽이었습니다. 당대 기사는 이들이 유공의 승리를 위해 스탠드를 조직적으로 선점하고 시즌 내내 지속해서 활동했음을 보여줍니다.

95년 유공 응원석의 규모가 96~97년의 수원삼성이나 안양보다 작았을 수 있습니다. 다만 지지의 대상(유공)과 지속성이라는 요건 자체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초기 규모가 작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활동의 성격을 부정하는 것은, 조직이 성장하는 과정 자체를 통째로 지우는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 '악기·깃발 동원'과 '원정' 요건에 대하여

악기가 늘어나고 대형 깃발이 제작되며 전국 원정 버스가 대절되는 것은, 서포터즈 조직이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를 서포터즈 여부를 가르는 최초 진입 조건으로 삼는 것은 인과관계를 거꾸로 놓은 접근일 수 있습니다.

어느 클럽의 서포터즈도 창단 첫날부터 완비된 물품과 대규모 인원을 갖추고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소수가 자발적으로 뜻을 모으는 단계(1995년)가 있어야, 이후 규모가 커지는 단계(1996~1997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정 시점의 깃발 개수나 원정 횟수를 기준으로 그 이전 단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 95년의 활동과 96년 이후의 성장 사이에 있는 연속성을 놓치게 됩니다.

■ '자발성과 독립성' 요건에 대하여

서포터즈를 규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명칭의 선점이나 도구의 규모보다 '구단으로부터 독립된 자발적 응원 주체인가'입니다.

1990년대 초 구단 직원이 메가폰을 쥐고 관객을 지휘하던 관제 응원의 방식에서 벗어나, 팬들 스스로 비용과 열정으로 응원 문화를 만들어간 사례가 1995년 유공 코끼리의 스탠드였습니다. 당대 일간지(경향신문 등) 사료는 이들이 PC통신 축구동 안에서 모였으나, 활동의 정체성만큼은 '유공 코끼리'라는 단일 클럽에 일치시켰음을 보여줍니다.

2. '언론 명칭'과 '공식 회장 체제' 요건에 대하여

해당 게시물은 1995년 유공 응원이 당대 언론에 '응원단', '팬클럽'으로 표기되었고, '헤르메스'라는 공식 단체명과 초대 회장 체제가 확립된 시점이 1997년이라는 점을 근거로, 1995년의 활동을 서포터즈의 시작점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이 기준을 적용할 때는 1990년대 국내 언론의 표기 관행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무렵까지도 국내 메이저 언론들은 외래어 '서포터즈' 대신 '축구 응원단', '동호인 응원단' 등의 표현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서포터즈 조직인 '붉은악마'조차 2002년 당시 신문 지면에서 '축구 국가대표 응원단 붉은악마'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원삼성의 그랑블루 역시 1996년 창단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수원삼성 응원단', '수원 사이버 응원단'으로 표기된 기사들이 다수 확인됩니다.

'언론에 서포터즈로 표기되고 공식 명칭·회장 체제가 확립되어야만 서포터즈로 인정한다'는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면, 2002년까지 응원단으로 불린 붉은악마나 2000년대 초반까지 응원단으로 표기된 그랑블루 역시 같은 기준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이는 이 기준 자체가 특정 시기의 언론 표기 관행과는 별개로 적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3. 개인의 기억과 사료의 관계

해당 게시물에는 "96~97년 동안 안양의 홈경기에서 유공 서포터를 본 기억이 전혀 없다"는 서술이 등장합니다. 개인의 기억은 소중한 증언 자료이지만, 도서관 아카이브에 날짜와 지면까지 명시되어 남아 있는 당대의 인쇄 사료와 함께 검토될 필요가 있습니다. 특정 개인이 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다른 기록에 남아 있는 1995년 이후의 활동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해당 게시물은 또한 1997년 8월 중국전 걸개 제작을 언급하며 붉은악마의 기원을 1995년 유공 응원단과 분리하려 하지만, 여러 기록에 따르면 붉은악마 결성을 주도한 인력 중 상당수는 1995년 동대문 유공 스탠드에서 자발적 서포팅 문법을 익힌 PC통신 축구동 구성원들이었습니다. 1997년의 공식 걸개 이전에, 자발적으로 뭉쳐 응원 문화를 만들어간 '인적 기반'과 '문화적 문법'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서포터즈'라는 단어는 특정 구단이 독점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명칭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클럽을 지지하고 응원 문화를 만들어간 팬들의 활동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에 가깝습니다.

그랑블루가 '수원삼성 응원단'으로 불리던 시절이나, 붉은악마가 '대표팀 응원단'으로 불리던 시절이나, 유공의 지지자들이 '동호인 응원단'으로 불리던 시절이나, 구단으로부터 독립하여 팬들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구단 직원의 리딩으로 대변되던 관제 응원 문화에서 벗어나, 자발적 서포팅의 본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행에 옮긴 사례 중 하나가 1995년 유공 코끼리의 스탠드였다는 점을, 남아 있는 사료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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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해당 게시물): https://m.blog.naver.com/frente_tricolor_/224247533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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