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를 비하하는 쪽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1995년 유공은 서포터즈가 아니라 그냥 팬클럽 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상대 진영에서 직접 올린 글이 그 논리를 완벽히 무너뜨립니다.
타 지지자 쪽에서 팬과 서포터즈의 정의를 정리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팬(Fan): '광신자'를 뜻하는 'Fanatic'에서 유래했습니다. 특정 팀이나 선수를 좋아하고, 경기를 관람하며 즐기는 개인 단위의 지지자를 의미합니다. 경기 결과에 기뻐하고 슬퍼하며, 축구를 소비하는 주체입니다.
서포터즈(Supporters): 단순히 팀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것을 넘어, 조직적이고 능동적으로 팀을 돕는 지지자들을 말합니다. 경기장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응원 문화를 만들어가며 팀의 승리를 위해 함께 뛰는 '제12의 선수'로서의 정체성을 가집니다.
핵심은 명쾌합니다.
주어진 것을 소비하는 주체가 팬이고, 능동적으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서포터즈입니다.
이제 1995년 유공 코끼리 스탠드를 이 정의에 대입해 보십시오.
그들은 구단 직원이 메가폰을 잡고 박수를 유도하던 관제 응원의 시대를 최초로 거부했습니다.
팬들이 조직을 만들고, 구단의 지휘 없이 독자적인 응원가(콜)를 창조했습니다.
스탠드를 스스로 장악하고 경기장 분위기를 능동적으로 주도했습니다.
그들이 축구를 일방적으로 소비했습니까, 아니면 새로운 응원 문화를 만들어갔습니까.
답은 상대방이 직접 올린 글 안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완벽한 서포터즈였습니다.
● "여러 팀 응원했으니 유량 서포터 아니냐"는 궤변에 대하여
초창기 하이텔 축구동호회 시절의 유동성을 문제 삼으며 "한 팀만 응원한 게 아니니 유량 팬클럽이다"라고 비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가져온 정의 글의 결론 문장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즉, 모든 서포터즈는 팬이지만, 모든 팬이 서포터즈인 것은 아닙니다.
이 명제는 팬덤 내부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함을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스포츠 사회학자 줄리아노티(Giulianotti) 역시, 축구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여러 클럽에 중첩된 애착을 가지며 서로 연대하는 형태 또한 축구 지지자 정체성의 정상적인 한 갈래라고 명확히 분류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시대적 맥락도 있습니다.
1995년은 대한민국 땅에 서포터즈 문화의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황무지였습니다.
선례도, 참고할 모델도 없는 시대에 맨땅에서 문화를 일궈내던 개척자들이었습니다.
초기의 유동적인 활동 양상은 비하의 근거가 아니라, 맨땅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길을 낸 개척자들의 훈장입니다.
● 정의를 읽었으면, 결론도 똑바로 읽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꺼내 든 그 글은, 이렇게 끝납니다.
서포터즈는 팬덤의 가장 열정적이고 조직적인 핵심 코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5년 유공 스탠드가 서포터즈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려면, 그들이 열정적이지 않았거나 조직적이지 않았다는 증거를 가져와야 합니다. 당시 사료들은 그 반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스탠드에서 시작된 흐름은 이후 붉은악마의 시초가 됐고, 한국 프로축구 서포터즈 문화 전체로 번져나갔습니다.
뿌리를 팬클럽이라 비하하려거든, 그 뿌리에서 자라난 대한민국 서포터즈 문화 전체를 부정하십시오.
상대가 부천을 깎아내리기 위해 꺼내 든 정의는, 결국 1995년 유공이 한국 최초의 서포터즈 핵심 코어였음을 가장 완벽하게 증명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첨부된 내용은 맥락은 같으나 작성자가 틀린 상태로 여러 글이 올라와 있어 대표적인 일부만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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