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무지와 아전인수식 해석이 극에 달하면, 급기야 '인터넷 게시판 개설 날짜'를 들고 와 진짜 역사를 지우려 드는 법입니다.

최근 전 부천 서포터 콜리더 일각에서 하이텔 축구동호회의 옛 공지사항을 교묘하게 왜곡하며 "부천 서포터즈는 5번째로 등록되었으니 1997년에야 급조된 가짜"라는 황당한 프레임을 유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1990년대 PC통신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기술적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껍데기 논리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신봉하는 '하이텔 5번 등록'이라는 족쇄가 왜 그들의 목을 치는 최악의 자충수인지 명명백백하게 밝힙니다.

1. 하이텔 게시판 개설 순서는 '서포터즈 탄생일'이 아니다

1997년 10월의 하이텔 공지를 똑바로 읽어봅시다. 공지에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아직 등록하지 못한 구단팬클럽에서는 회장 포함 발기인 7인 이상으로 신청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문장이 함의하는 바는 너무나 명쾌합니다.

하이텔 축구동호회에 등록하기 이전부터, 현장에는 이미 각 구단의 자발적인 지지자 그룹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어느 신생 구단 서포터즈가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다가 뒤늦게 '네이버 카페'를 개설했다고 해서, "너희 서포터즈는 네이버 카페 개설일에 태어난 것"이라고 우긴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입니까?

당시 하이텔 공지는 단순히 하이텔 축구동 내부의 인프라 정비 및 게시판 개설 순서를 나열한 행정 문서일 뿐이지, 각 구단 서포터즈의 실제 탄생 시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만약 그들의 해괴한 논리대로 게시판 개설일 = 서포터즈 탄생일이라면,
97년 10월에 등록 코드를 부여받은 수원삼성 서포터 역시 1996년이 아니라 1997년에 태어난 가짜 서포터즈가 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됩니다.

2. PC통신은 고가의 전유물, 현장의 열정이 모니터 안에 갇힐 수 없다

왜 현장 서포팅의 시작(1995년)과 하이텔 게시판 개설(1997년) 사이에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것은 당대의 냉혹한 기술적·경제적 문턱 때문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 PC통신을 하기 위해서는 수백만 원짜리 컴퓨터와 매달 수만 원~십만 원이 넘는 살인적인 전화요금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현재 물가로 치면 매달 20만 원의 이용료를 내야 포털사이트를 쓸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당연히 경기장을 찾는 수백 명의 서포터 중 PC통신을 할 수 있는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현장 지도부나 골수 서포터들조차 PC통신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하이텔은 동호회·게시판 개설 기준이 매우 엄격하여, 현장에 서포터즈가 버젓이 존재해도 PC통신 유저 수가 부족하면 게시판을 열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준이 유연했던 나우누리나 유니텔에 부천 서포터즈 게시판이 먼저 개설되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현장에서 몸을 부딪치며 자발적 응원 문화를 창조하던 개척자들의 역사를, 단지 하이텔의 게시판 개설이 늦었다는 이유로 폄훼하는 것은 서포터즈 문화의 본질인 '스탠드의 자발성'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3. 사료가 증명하는 1996년 부천 서포터즈의 실체

상대방의 주장대로 1996년에 부천 서포터즈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1996년 4월 24일 하이텔 축구동호회에 올라온 이 1차 사료는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제목: 'FORZA! PUCHUN'보단 이게 낫지 않을까요? (96/04/24)

"'나가자! 부천보라매, 하라쇼! 니폼니쉬' 이거 어때요? 그리고 '윤정환은 이미 월드스타입니다'도 괜찮겠지요... 우리 기금 이런 데 쓰라는 거지, 뭐 딴 데 쓸 일 있겠어요?"

독립 게시판만 없었을 뿐, 부천의 지지자들은 이미 1996년 초반부터 하이텔 축구동 안에서 이탈리아어 서포팅 구호인 'FORZA(포르자)'를 논하고 있었고, 서포터즈 자체 기금을 모아 응원 배너와 문구를 제작하자며 지지자 그룹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1차 사료는 1996년 부천의 서포팅 핵심 코어가 명백히 살아 숨 쉬고 있었음을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방증합니다.

4. 결론: 형식이 없다고 본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1995년 동대문 스탠드에서 관제 응원을 타파하며 '자발적 서포팅'의 DNA를 대한민국 땅에 최초로 뿌린 이들이 바로 부천의 선구자들이었습니다.

형식을 갖추고 세력을 키운 후발 주자들이, 창세기의 눈물겨운 개척사를 향해 "너희는 왜 1997년에야 하이텔에 등록증을 끊었냐"고 타박하는 것은 역사의 선후 관계를 뒤트는 궤변일 뿐입니다.

상대 진영이 부천을 부정하기 위해 내민 하이텔 공지사항은, 역설적으로 "등록 이전부터 서포터즈는 존재했다"는 진실과 "96년에도 부천은 포르자를 외치며 살아 움직였다"는 팩트를 증명하는 부메랑이 되어 그들의 억지 논리를 완전히 관통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모니터 안의 게시판 번호가 아니라, 경기장 스탠드 위 개척자들의 발자취가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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