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일부 수원삼성서포터즈는 "부천은 초창기에 '서포터즈'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포터즈가 아니며, '서포터즈'라는 단어를 최초로 명문화하여 사용한 우리 수원삼성이야말로 대한민국 최초의 서포터즈다"라는 명칭 중심의 논리를 지속적으로 내세워왔습니다.

이는 명칭이라는 형식이 실체보다 우선한다는 전제에 기반한 주장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근거로 삼는 1997년 6월 15일 자 스포츠서울 기사는, 역설적으로 이 명칭 독점권 주장 자체를 무너뜨리는 근거가 됩니다.

당대 공신력 있는 일간지 기사에는, 수원 측 주장대로라면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부천 서포터즈'의 존재와 활동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1997년 시점에 이미 언론이 부천을 서포터즈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더 주목할 부분은, 이 기사 안에서 수원삼성 역시 부천, 유공 등과 함께 '축구 동호인', '축구 동호회'라는 표현으로 동일하게 분류되었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이 제시한 기준(언론이나 문서에 적힌 명칭이 곧 정체성이다)을 이 기사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부천을 동호인 수준이라 평가절하하던 수원삼성 역시, 같은 1997년 언론 기준으로는 '축구 동호인'으로 분류되는 결과에 이릅니다.

즉, 부천을 향해 제기했던 "명칭이 없으면 서포터즈가 아니다"라는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그 기준은 오히려 자신들에게도 동일하게 돌아오는 셈입니다.

하단은 호나우도님 글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하이텔 축구동호에 정식으로 등록한 97년 9월 19일 탄생했다는 부천 서포터.

이전에 하이텔 축구동에 97년 7월 작성된 글을 통해 부천 서포터가 계속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했는데, 아직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 일개 동호회 글이 아닌 더 공신력 있고 더 이전 시기의 자료를 올려봅니다.

[97년 6월 15일 스포츠서울]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붉은악마)를 소개하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만 놓고 보면, 명칭이나 등록 시점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쪽의 논리에 오히려 더 큰 반례가 되는 셈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같은 날 기사에 97년 6월 15일 안양 서포터 발대식이 열렸다는 기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안양 서포터가 97년 4월에 생겼다면서, 97년 6월 15일에 발대식을 했다는 기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마 97년 4월부터 모여서 응원을 했으나, 공식적인 조직을 출범시킨 것은 97년 6월 15일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유공도 마찬가지입니다. 95년 5월부터 응원을 하였고, 공식적인 조직을 출범시킨 것은 97년 9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공은 95년 5월이 시작이고, 안양LG는 97년 4월 시작이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97년 6월 15일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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