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해외여행은 돈 많이 들어갑니다.
당시는 IMF라는 시절이라 환율이 엄청 올라갔던 시절이죠. 엔화가 100엔당 1000원도 돌파했다가 900원 선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늘 엔화 검색하니 100엔당 960원 대네요, 거의 비슷했습니다. 그만큼 IMF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준비하는 붉은악마 운영측에선 그 때문에 여행 일정 짜느라 힘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개인이 돈 준비하는 것도 벅찬 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했고, 숙소문제, 응원도구 반입문제 등이 넘쳐났습니다.
1997년 '도쿄대첩' 글을 쓰게 되면 이야기 하겠지만 당시 대형깃발 용으로 쓰던 장대는 진짜 장대였습니다.
뭔이야기냐면 지금의 금속재질, 탄소섬유 재질이 아닌 진짜 대나무였어요.
제 세대 아마도 1980년생 이전의 분이라면 기억하실지도 모르는 집집마다 TV보려고 안테나 높이 올리기 위해 쓰던 장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생선뼈 모양이나 빨래 거는 거 같은 금속봉으로 만들어진 틀을 장대에 매달아 올렸던거였죠.
그때 대나무 장대를 전문적으로 팔던 곳도 있었어요.
그러고보니 지금의 인천 숭의아레나 인근에 그 장대 파는 곳이 있었었네요.
이 장대 때문에 출국관련해서 문제가 있었고 이 부분을 정부 지원으로 통과했었던 것으로 압니다.
KFA가 보증 서구요.
'대나무' 다 보니까 이게 통관에 문제가 발생했답니다. 제 기억으로는 '대나무'라서 생물학적 부분 문제가 되었다고 해요.
지금도 유튜브 보면 외지 동.식물 반입은 함부로 안되는 영상 보실 겁니다. 이 문제가 터져나온 겁니다.
씨앗이나 심지어 말린 건조식품까지도 제한 걸리고 방역통검 한 뒤에야 반입 가능 판정이 나와야 되는 공항 통과가 되지요.
'대나무'도 여기에 들어가는 것이라서 1경기의 1회성 응원 깃발용으로만 쓰는 것이라고 해도 문제되는 거였습니다.
도쿄대첩 때에 2박3일 일정이라 양국 정부와 축구협회가 어찌 사바사바 했다지만, 1998 프랑스 월드컵은 조별예선만 보름짜리 일정입니다. 거기다 직항도 아니구요. 장대를 가져가는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1998 월드컵 예선에서는 다른 장대를 가져갔습니다.
KT에서 지원 받아서 전봇대의 전기선 가설 때 쓰는 다단봉을 지원받아서 갔습니다.
길이가 10-15m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해요. 나중에 이 봉에 얽힌 이야기 여럿 나옵니다. ㅎㅎ
장대 하나만 해도 KFA와 프랑스월드컵 조직위원회간에 연락을 주고받고 막히면 한국정부와 프랑스 정부와도 이야기 되어야 했습니다. 이게 전화 한통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응원 깃발 하나만 가지고도 이정도였습니다.
이런 것들 외에도 계속해서 이 문제, 저 문제 터져나오니 이것들 다 검토하고 해결하느라 당시 운영진들 진짜 고생하고 발로 뛰고 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뭔가 이상함을 느끼실 거에요.
"양원석이, 너 그때 운영진 아니었어?"
하는 의문이 생기셨다면 관찰력 좋은 분이십니다.
네 전 당시 나우누리 축구동 시삽이긴 했지만 붉은악마 운영진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전 일반회원 자격으로 간 거였지 운영진 이라는 직함과 운영진으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당시 한 참가자의 시각으로 쓰여진 글이지 운영진의 회고록이 아닙니다. 이점 명확히 합니다.
(퍼가는 과정에서 제가 당시 '나우누리 축구동 시삽' 이라는 것 때문에 운영진이라 왜곡하는 사람들이 분명 나오거든요.)
여튼 진행과정에서 참가자 모집은 각 서포터 조직과 PC통신에서 모집해서 관련 자료를 운영진에게 전달했어요. 그러면 전체공지를 보내는 식으로 해서 참가자들이 준비할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해서 운영진에게 보내주고 그것들을 모아서 하나하나 진행해 나갔습니다.
돈이 없어 망설이던 회원들을 위해 제일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주는 것으로 어느정도 되었습니다.
200만원인가 300만원 대출하고 3년에 걸쳐 상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근데...일반적인 마이너스 통장보다는 금리가 높았어요.
부모님이 대출금리 보시고 '일반 마이너스보다 금리가 높네?' 라고 하시며 눈쌀 찌푸리시던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이거 진행하던 분이 당시 금강제화 다니던 부산 서포터 분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금강제화에서도 재무팀에서 한 자리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담보도 없고 그 은행과 신용거래 안하던 사람들까지 일괄적으로 받아주는 거니까. 금리 손해를 받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하라더라. 안그러면 도와줄 수 없대. 지원 같은건 없었던 거야'
라고 쓴웃음 지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관련 적금상품 나오고 하는 거라던가, 붉은악마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푸대접 받은거죠. 이정도라도 뽑아내고 받아내기 위해서 당시 운영진들이 얼마나 뛰어다니고 고생했는지...
이렇게 대출을 받아도 여비는 많이 모자랐어요.
왕복비행기값과 프랑스 내에서의 교통편과 숙소예약비 등에 기본으로 들어가는게 있었고. 그 외에 쓸 돈이 필요하다보니 돈이 더 필요했어요.
그래서 당시 '슈팅' 만화스토리를 쓰고 있었던 때라서 전세훈 선생님께도 도움받고(원고료 땡겨받음) Capt. Yang 양광성 형님도 도와주셨습니다.
해서 어찌어찌 여행비용은 마련했습니다.
준비물 관련해서는 먹거리나 물거리 등을 챙기기 위해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C레이션 파는 시장좀 돌아다녔습니다.
지금은 미군 C레이션이나 한국군 K레이션 파는 정식 시장이 있고 인터넷으로 구매 가능하지만 당시는 발품 팔아야 했어요.
이런것들 준비는 꼭 필요했습니다.
나중에 끝까지 20일간 같이한 1진 멤버들이 '양원석이 준비해준거 아니었음 곤란한거 많았다'라면서 '역시 여행경력 있는 사람은 달라'라면서 당시 운영진들이 "양원석인 무조건 1진에 끌고가야 한다"라고 했던걸 증명했습니다.
이건 전적으로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조언이 컸습니다. 보이스카우트 대장이셨기 때문에 서바이벌쪽은 좀 하시던 분이었거든요.
제가 가져갈까 말까 고민했던 아이템이 몇 있었는데 '무조건 가져가' 라면서 억지로 넘기신 아이템 진짜 잘 써먹었습니다.
그리고 일정이 발표되었습니다.
총 3진으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3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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