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2월 16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칸타타 선언이 작성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정교한 회칙과 나란히 놓으면 그 형식은 거칠고 소박해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첫 시작'은 그 자체로 무게를 지닙니다. 완성된 체제가 아닌,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처음으로 깃발을 꾹 꽂은 순간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1. 미숙함은 결함이 아니라 시작의 증표입니다
오늘날 붉은악마의 회칙은 가맹단체·자치단체의 위계, 운영위원회의 의결 구조, 티켓 구매 규정, 윤리위원회 징계 절차 등 수십 년의 현장 경험이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이 체계는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서포터즈는 조직의 틀이 잡히기 전에 이미 경기장에 모이고 있었습니다. 회칙은 그 이후에 따라온 것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성장하면서 비로소 골격을 갖추는 것이지, 골격이 먼저 설계된 것이 아닙니다. 칸타타 선언은 그 골격이 생기기 이전의 기록입니다. 완성되지 않은 투박함이 바로,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처음으로 movement를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2. 정신이 선행하고, 제도가 따라옵니다
칸타타 선언의 핵심 문장은 단순합니다:
"열린 동호회를 지향한다."
"실천하는 동호회를 지향한다."
"일체의 영리나 권위를 배격한다."
그러나 오늘날 서포터즈 문화 전반에 살아 숨 쉬는 본질적 가치가 이 짧은 문장 안에 이미 담겨 있습니다. 현재의 세련된 규정들은 결국 이 선언이 던진 정신적 원형을 시대에 맞게 구체화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어떤 자발적 조직도 완벽한 정관을 손에 쥐고 출발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법률을 제정하기 전에 독립의지가 먼저 존재했고, 기업이 정관을 정립하기 전에 창업자의 비전과 동지애가 먼저 존재했습니다. 시작이 있었기에 제도가 생겼고, 정신이 있었기에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칸타타 선언은 그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3. 부천의 시작: 자발적 개척의 현장
1995년, 목동과 동대문 스탠드를 찾던 유공(현 부천 FC 1995)의 팬들은 완벽한 조직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체계적인 회칙도, 공식 등록증도, 번듯한 단체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 있었습니다. 응원하고, 모이고, 하이텔 게시판에 글을 남기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서포터즈로서의 움직임은 이미 그 자리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한국 서포터 문화는 누군가 매뉴얼을 짜서 보급한 기성품이 아닙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응원 구호를 맞추고, 손수 깃발을 올리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원정을 다니며 스스로 개척한 문화입니다. 부천의 그 시작이 바로 그 개척의 원점이었습니다.
4. 흩어진 씨앗은 모판의 증거입니다
한 가지 반론이 제기됩니다: "초기 멤버 상당수가 이후 수원 삼성 등 다른 팀의 서포터즈로 옮겨갔기 때문에 부천의 역사적 연속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는 인과관계를 거꾸로 읽은 오류입니다.
강물이 하류로 흘러 새로운 지역을 적신다고 해서, 그 강의 발원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천의 초기 서포터즈가 다른 팀으로 퍼져나갔다고 해서 부천의 역사적 기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1995년 유공의 서포터 문화 안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이 이후 각자의 연고 팀으로 이동하여 서포터즈를 만들어갔다면, 그것은 부천이 한국 서포터 문화의 모판(母板)이었다는 사실을 오히려 입증합니다. 인원이 퍼져나간 것은 소멸의 증거가 아니라 영향력의 증거입니다.
5. 창립 세대의 부재가 역사를 지우지 않습니다
나아가, "당시의 인원이 지금 남아 있지 않다"거나 "조직의 명맥이 끊겼다"는 주장도 같은 오류를 반복합니다.
창립 세대가 자리를 떠났다는 사실이 창립의 사실 자체를 소멸시키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지금 아무도 살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1919년 4월 11일이라는 역사적 기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명맥의 단절과 기원의 소멸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조직이 한때 침체를 겪거나 구성원이 교체되었다는 사실은, 그 시작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또한, 소수의 인원이 여전히 부천의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논리는 역사 부인에 가깝습니다.
6. 시작을 부정하면 역사도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서포터즈의 자격을 명문화된 단체명이나 조직의 완성도로 재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서포터 문화의 본질을 관료제적 시각으로 환원하는 오류입니다.
시작이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그 시작을 지운다면, 완성된 건물을 보고 나서 초석을 놓던 순간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모든 조직은 사람이 먼저 모이고, 그 다음에 규정이 생깁니다. 규정이 있어야 조직이 성립한다는 논리는 역사적 사실과 정반대입니다.
칸타타 선언의 내용은 미숙했습니다. 부천의 시작도 미숙했습니다. 그러나 그 첫걸음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축구 서포터 문화도 없었을 것입니다. 칸타타 선언은 시작의 용기를, 붉은악마 회칙은 그 정신의 체계를 담고 있습니다. 두 문서는 각각 다른 시대를 대표하지만, 한국 서포터 문화의 정체성을 잇는 같은 유산이며, 오늘도 우리에게 시작의 중요성과 정신의 연속성을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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