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나우도님이 발췌한 1999년 당시 언론 보도 기사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축구사에서 부천이 왜, 그리고 언제 최초로 '12번'을
지지자들의 번호로 헌정하고 영구결번했는지 그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기록으로 증명한다.
FACT 01언제 영구결번 되었는가?
시점: 1997년 12월.
부천의 지지자들은 1997년 말, 단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경기장 위에서 뛰는 11명의 선수 다음인 '12번째 선수(No.12)'라는 개념을 대한민국 축구사 최초로 정립했다. 구단 역시 팬들의 이러한 자발적 움직임과 열정에 응답하여, 선수단 배번에서 12번을 제외하고 이를 팬들의 고유 번호로 헌정하는 '영구결번'을 공식화했다.
▲ 1999년 당시 언론 보도 기사 원문 (호나우도 발췌)
"이런 시도는 지난해 부천SK가 가장 먼저 도입했다. .95시즌 국내에서 가장 먼저 서포터즈 구성한 부천감팀이 12번을 서포터즈 '헤르메스'에 돌려주었던 것. 그리고는 나오는 '12배 넘의 선'이다. 99시즌 10개팀 중에서는 부천SK만이 12번을 서포터즈에게 계속 헌정했다."

FACT 02 왜, 12번을 영구결번했는가?
기사가 증명하는 본질
첫째, '12번째 선수'로서의 주체성 선언
당시 부천의 팬들은 구단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관람객이나 구단의 소유물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12번째 신이자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HERMES)'의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가 바로 경기장 안팎에서 선수들과 함께 숨 쉬고 구단을 움직이는 12번째 주체"임을 선포하기 위해 12번을 영구결번했다.
둘째, 동대문과 목동의 척박함을 견뎌낸 '자발성'의 보상
1995년 동대문운동장 단관 시절부터 1996년 목동운동장 임시 홈구장 시절까지, 당시 부천 유공의 팬들은 대단한 제도나 체계 없이도 오직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텅 빈 스탠드를 지켜왔다. 1999년 기사에서 부천을 "국내 최초의 12번, 최초의 서포터"로 공인한 이유는, 그 초라하고 척박했던 시절의 명맥을 스스로 유지하고 개척해 낸 팬들의 자발적인 행동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FACT 03 김은철 선수의 번호 양보와 아름다운 헌정
12번 영구결번이 완성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부천 유공의 핵심 수비수이자 실제 유니폼 배번 12번의 주인공이었던 김은철 선수의 결단과 지지자들을 향한 깊은 존중이 있었다.
1997년 말, 서포터즈가 '12번째 선수'로서의 정체성을 공표하자 김은철 선수는 자신이 달고 뛰던 등번호 12번을 서포터즈 '헤르메스'에게 기꺼이 양보하였다. 선수가 팬들의 열정에 화답하여 자신의 등번호를 내려놓고 이를 지지자들의 몫으로 헌정한 이 일화는, 구단과 선수, 그리고 서포터즈가 수평적인 동반자 관계로 나아간 대한민국 축구사의 가장 아름다운 연대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은철 선수
포지션: 수비수 (DF)
소속: 부천 유공 / 부천 SK (1996 ~ 1999)
특징: 명장 니폼니시 감독 체제 아래에서 부천의 후방과 측면을 책임졌던 투지 넘치고 영리한 수비수
이적 배경: 1996년 목동 임시 홈구장 시절부터 팀의 수비 기틀을 함께 다짐
헌정: 1997년 말 자신의 등번호 12번을 팬들에게 헌정한 후 다른 번호(22번 등)를 달고 부천을 위해 헌신
history.bucheonfc.net · ORIGINAL 1995 Project
본 문서는 호나우도님 제공 1999년 언론 기사 원문을 바탕으로 작성된 사실관계 정리 아카이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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