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운동장, 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큰형님과 나눈 첫 대화

기억의 오류가 아니라면, 그 인연은 1997년 초, 봄바람이 아직 차갑게 손끝을 파고들던 목동운동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탠드 한쪽에서 유난히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한, 한눈에 봐도 큰형님뻘 되는 분이 슬그머니 다가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경기장 자주 와요?"
"네, 가끔 오는데… 형님도 자주 오세요?"

25845.jpg

(우) 고 '양광성'님 (좌)울트라 니폰의 대표는 '우에다 아사히(植田朝日)'

형님께서는 집과 가까운 목동경기장을 드나들다 1996년부터 부천 유공의 경기와 서포터즈를 눈여겨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당신 역시 처음에는 저처럼 한 발짝 뒤에서 묵묵히 지켜만 보던 사람이었다고 털어놓으시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습니다. 그날의 짧고 담백했던 인사가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을 이어 갈 깊은 인연의 서막이 될 줄은, 그때는 정말 알지 못했습니다.

  • 파도를 가르던 선장, 대양 위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축구 열정

형님의 본업은 거대한 유조선을 지휘하는 선장이었습니다. 함교에 올라 수만 톤의 철선을 이끌고 대양을 건너던 그 묵직한 책임의 무게는, 스탠드에서 부천을 응원하던 형님의 우직한 모습과 어딘가 닮아 있었습니다. 목소리에는 늘 짠 바닷바람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요.

때로는 엄격한 선생님처럼, 때로는 철없는 친구처럼 곁을 지켜 주시던 형님은, 배가 항구에 정박하는 단 며칠의 자유 시간만 주어지면 남들은 상상도 못 할 스케일로 유럽 전역을 누비며 현지 축구 경기를 직접 관람하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대기하는 기간에는 어김없이 집 앞마당처럼 드나들던 목동운동장으로 달려와 스탠드를 지키셨습니다.

오랜 시간 외로운 대양 위에서 홀로 흘려보낸 날들 때문이었을까요. 육지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면 유독 말씀이 많아지시던 형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 길고 길었던 대화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축구와 서포터즈 이야기뿐이었습니다. 그만큼 형님의 영혼은 온통 축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번은 오랜 항해 생활에 지쳐 다니던 해운회사를 퇴직하시고, 다른 해운 회사의 사무직으로 자리를 옮기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다의 거친 숨결과 스탠드의 함성을 그리워하시던 형님은 결국 삭막한 사무실 모니터 앞을 버티지 못하시고, 다시 뱃머리를 돌려 선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형님께는 그것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귀항이었을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서는 "새해 첫날 대통령과 통화하게 되었으니 신문이랑 뉴스 꼭 봐라!"라며 뜬금없는 너스레를 떠시던, 참으로 낭만적이고도 유쾌한 괴짜였던 우리 형님.

  • 하늘에서도 응원하고 계실, 1부 리그의 부천을 위하여

마지막 가시는 길을 곁에서 배웅해 드리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무겁게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오랜 세월 포항의 서포터로서 형님과 깊은 교류를 나누셨던 서동명 님의 기록, 『월드컵 티토리 회고록』에 담긴 절절한 추모의 글을 다시 꺼내 읽습니다. 그 글을 통해, 형님께서 우리 부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초창기 서포터즈 문화 전체에 얼마나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신 어른이셨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 바다보다 넓은 마음으로 축구를 사랑하셨던, 양광성 형님.

비록 지금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저 높은 하늘 위에서도 당당히 1부 리그 무대를 누비는 부천 FC 1995의 모습을 흐뭇하게 내려다보시며, 변함없이 그 거친 목소리로 응원을 보내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형님, 이제는 거친 파도도, 외로운 항해도 없는 그곳에서 영원히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고이 편안히 잠드소서.

▶ 포항 서포터즈 서동명 님의 글 중 — 목동경기장·부천 서포터즈 회상 부분 발췌

26039.jpg

※ 원문 출처 (서동명 님 블로그 「민간인 족쟁이」):
https://worldcup.tistory.com/2460689

양광성(光成) 1959년~2014년. 붉은악마 원년 멤버 및 부천 서포터스 헤르메스 원년 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