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위안 → 방콕 돈므앙 → 스톡홀름 알란다
1998. 6. 18
남은 시간 15분
서울▶타이페이 타오위안▶방콕 돈므앙 ★▶스톡홀름 알란다▶파리▶리옹
첫 번째 경유지인 타이페이 타오위안 국제공항까지는 여유만만했습니다. 다들 긴장이 바짝 들어있었죠. 공항에서 내려서 휴식 한 시간 정도를 취한 뒤 다시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탑승 안내 방송도, 전광판도 아무것도 뜨지 않는 겁니다. 이게 뭐지?
1진 중 한 분이 다급하게 안내 데스크에 물어봤더니 "준비가 덜 되서 출항을 못하고 있다"며 대기하라고 했답니다. 뜨는 시간이 너무 늦어져 방콕에서 갈아타야 할 비행기를 놓친다면? 상상하기도 힘들었습니다. 한두 명이면 모를까, 18명이 다음 비행기에 다 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당시 일정
서울 출발 → 리옹 경기 전전날 파리 도착
다음날 리옹 이동 후 1박
리옹 멕시코전 응원
태국에서 발목 잡히면 → 멕시코전 응원 불가
거기다 타오위안 공항은 엄청 좁았습니다. 휴게실은 이미 꽉꽉 차 있어서 앉지도 못하고 그냥 복도에서 서서 기다리고만 있었어요. 휴게실에서는 1998 월드컵 개막전을 틀어주고 있었습니다. 딱 그 시간이었거든요.
계속 경기를 보다 보니 이제 비행기 탑승을 해야 할 시점에서 브라질의 리드골이 터졌습니다. 스코틀랜드 골키퍼 짐 레이튼도 나이 든 게 보이더군요. 이게 결국 결승골이 되었습니다. 이 골이 들어가는 거 보자마자 바로 보딩패스 끊으러 갔습니다.
방콕 돈므앙 공항
방콕까지의 여정은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워크맨으로 음악 듣고 있긴 했지만 마음속은 온통 모니터의 내비게이션 화면만 보며 '더 빨리, 더 빨리 안 되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방콕 공항에 랜딩하면서까지도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는 버스 기사에게 소리를 지를 정도였습니다. 붉은악마 회장도 '표 바꿔야 하는데' 하고 끙끙댔고, 수원삼성 직원인 수원 서포터도 '표 어디서 바꾸는지도 모르는데…' 라며 끙끙댔습니다.
Trans 하는 곳으로 간 뒤, 수원 서포터가 카운터에서 뭐라뭐라 하더니만 안색이 사색이 되서 바로 큰소리로—
"형들! 우리 타야 할 곳이 저쪽 터미널 끝이래요!
표 바꿔주자마자 뛰어가야 한대!
걸어서 20분 걸리는 곳인데 30분 뒤에 비행기 뜬대요!
지금 보딩 중이래!"
문제는 18명의 비행기표를 하나하나 새로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비행기 표는 수표책처럼 묶음으로 나왔고, 하나하나 뜯어서 새로 보딩패스를 받아야 했습니다. 시간은 째깍째깍 가고 있고, 우린 속터지고 있고, 직원 재촉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결국 18명의 표가 다 나왔습니다. 이제 15분밖에 남지 않은 때. 표가 나오자마자 다들 입에서 이 말이 나왔습니다.
"뛰어!!! 뛰라고!!! 늦으면 안 돼!!!"
냅다 뛰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무거운 짐을 들고 있었지만 그딴 거 없었습니다. 축구선수 출신의 조승옥 형은 다른 분의 짐까지 자기가 메고 뛰기 시작했고, 구단 대리님 세 분도 마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연장자인 전명준 형도 헉헉대면서 뛰셨고, 막내인 울산 서포터 회장 여경택 군도 다른 사람 짐 들고 달렸습니다.
달리는 중에 이런 소리도 들렸습니다.
"게이트에 먼저 도착한 사람은 뒤에 일행 여럿 온다고 비행기 잡고 있어!!!
우리 다 탈 때까지 비행기 못 뜨게 해야 해!!!"
10분컷
10분
걸어서 25분 거리 · 짐 들고 · 전력질주
2000년 EURO 때 같은 코스를 느긋하게 걸어보니 — 25분
1998년 이날, 짐 크기도 비슷했는데 — 10분컷
스톡홀름행 비행기 표를 체크하는 게이트까지 달린 게 겨우 10분. 진짜 다신 그렇게 못 달릴 것 같았습니다. 2000년 때 그 코스를 다시 걸어보면서 느꼈습니다. '야, 이걸 이때 10분컷 했다니… 그때 진짜 절실했구나.'
이제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까지 무려 13시간의 여정. 1진은 비행기 좌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지만 다들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비행기 탔다.'
방콕을 출발한 게 방콕 시간으로 자정이 좀 넘었던 때였습니다.
다음화
가자 스톡홀름 —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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