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상에서 수원 삼성 서포터즈(프렌테 트리콜로) 측이 주장하는 "국내 최초 서포터즈" 논리를 종합해 보면 크게 네 가지 프레임으로 정리됩니다. 본 아카이브가 보유한 당대의 명확한 1차 사료와 동시대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이 네 가지 주장에 대한 사실관계를 하나씩 바로잡고자 합니다.
[주장 1]
"1995년 당시 유공 팬클럽은 존재하지 않았다"
반박 — 명백한 허위 사실입니다
1995년 5월 14일, 신동일 님이 하이텔 축구동호회 후원회장 자격으로 유공 구단에 보낸 공식 서한 원문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직후인 5월 20일 자 일간지(스포츠조선 등)에는 구단이 이 자발적 유저들과 공식적으로 협조 및 소통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 기사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같은 해 9월 13일, 경기장에서 이들이 주도한 조직적 단체 응원 장면을 담은 방송 영상 자료까지 확보되어 있습니다.
문서, 신문 기사, 영상이라는 최상위 1차 사료가 실존하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주장 2]
"양원석은 단지 윤정환 개인 팬클럽 회장이었을 뿐이다"
반박 — 사실과 다르며, 심각한 직함 왜곡입니다
양원석 님은 특정 선수의 개인 팬클럽 회장을 맡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당시 프로축구 여론과 문화를 주도하던 최고 커뮤니티인 하이텔 축구동호회 (시샵, Sysop)였으며, 개인 팬클럽 회장은 따로 존재했습니다. 당시 유공 구단 프론트가 이들과 긴밀히 파트너십을 맺은 이유 역시, 한 선수의 개인 팬이 아니라 축구동의 시샵 및 운영진이 가진 조직적 상징성 때문이었습니다.
상대 측에서는 이를 두고 "팀 서포터즈가 아니라 단지 팬클럽 수준이었다"고 격하하려 하지만, 이 논리는 오히려 저희의 정통성을 더욱 굳건하게 증명해 줍니다. 양원석 님은 1995년 당시부터 현재까지도 부천의 지지자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최장기 서포터즈입니다. 만약 단지 한 선수의 개인 팬클럽 회장에 불과했다면 선수의 이적이나 은퇴, 혹은 팀의 소멸과 함께 활동이 끝났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한 연고지와 구단을 지켜오며 팀의 재창단까지 이끌어낸 이력 자체가, 그가 초창기부터 단순 팬클럽이 아닌 강력한 서포터즈의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신동일 님이 1998년까지, 송기룡 님이 1996년까지 하이텔 축구동호회에서 유공 경기장을 직접 찾고 남긴 관람기와 활동 기록도 본 아카이브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핵심 인물들의 직함을 뒤바꾸고 활동 기간을 임의로 축소하려는 외부의 주관적 회고는, 이러한 당대 기록 앞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주장 3]
"단일 구단만 지지해야 진짜 서포터즈다"
반박 — 후발 조직이 임의로 세운 기준이며, 선행된 역사를 재단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팀만을 응원하는 형태만이 진짜 서포터즈"라는 기준 자체가 누구에 의해 정해진 것인지 되물어야 합니다. 이는 1995년 5월 하이텔 축구동호회가 유공을 조직적으로 응원하던 시점보다 최소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늦은 1996년, 수원 삼성 창단과 함께 출범한 서포터즈 클럽이 자체적으로 세운 내부 규정일 뿐입니다.
이러한 독점적 규정을 역사 평가의 절대적 기준으로 인정한다면, 시기적으로 명백히 앞서 유공을 지지하고 응원 문화를 개척했던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 최초의 팬이자 선행자가 됩니다. 행여 그 기준이 맞다 하더라도, 단 한명이라도 명맥을 유지 했던 진짜서포터즈라는 논리는 부천서포터즈가 그 기준에 규합합니다.
다만, 후발 조직이 자신들의 출범 환경에 맞춰 사후에 정의한 주관적 지침으로, 이미 존재했던 수개월 전의 선행 역사를 지우거나 부정하는 것은 명백한 아전인수격 해석입니다.
[주장 4]
"여러 팀을 돌아가며 응원한 팬덤이라 정통성이 없다"
반박 — 개인의 교류와 구단 공식 파트너십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1995년 당시 척박했던 대한민국 프로축구 환경에서, 하이텔 축구동호회 회원 중 소수 인원이 현장 응원에 참석했고, 이들이 동대문 더블헤더(하루 두 경기 연속 개최) 경기 등에서 타 팀을 격려하거나 타 팀 유저들과 "우리 각 팀마다 멋진 서포터즈를 만들어보자"는 암묵적 공감대 하에 원정길을 돕고 교류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핵심은, 당시 그 어떤 팀의 팬덤도 구단 프론트와 공식적으로 조율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인 사례가 없다는 점입니다. 오직 유공 지지자(하이텔 축구동 후원회)만이 구단 단장 및 프론트와 공식 협의를 거쳐 응원 물품 지원을 이끌어내고 공식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소수의 개인이 축구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여러 팀을 오가며 응원 문화를 전파한 낭만적인 교류의 역사와, 구단과 공식 관계를 맺고 태동한 최초의 조직적 서포팅 활동은 본질적으로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 공식적인 최초의 실체는 오직 부천(당시 유공)에만 존재했습니다.
[결론]
초기 한국 축구 서포터즈 문화의 역사는 특정 형태나 후발 주자의 독점적 정의에 가두기보다, 1995년 한 해 동안 척박한 땅에서 자발적으로 피어난 개척자들의 노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1995년 5월이라는 확고한 기준점 문서가 실존하고, 당대 커뮤니티의 "시샵"였던 "양원석" 님을 필두로 핵심 코어 멤버들의 역사적 연속성이 2006년 연고지 이전 저항 운동을 거쳐 부천 FC 1995의 시민구단 창단으로 고스란히 귀결되는 이상, 대한민국 자발적 서포터즈 문화의 진정한 뿌리가 부천에 있다는 사실은 결코 흔들릴 수 없는 역사적 진실입니다.
Bucheon FC 1995 History Archive · history.bucheonf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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