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RIGINAL1995 ORIGINAL1995 · EDITORIAL

명품의 가치는 로고가 아니라 서사에서 나온다. 2009년 7월, 같은 한 주에 서울과 부천에서 벌어진 두 개의 '유나이티드'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했다.

명품 브랜드가 파는 것은 결국 재료도 디자인도 아닌 이야기다. 몇 대에 걸쳐 이어진 공방, 창업자의 고집, 위기를 넘긴 서사 — 이것들은 돈으로 살 수 있어도 자본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다. 축구 클럽의 헤리티지도 마찬가지다. 2009년 7월 셋째 주, 서울과 부천에서 같은 도시 이름을 단 두 개의 '유나이티드'가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을 찾았다. 하나는 브랜드를 팔러 왔고, 다른 하나는 이야기를 만나러 왔다.

1. 같은 한 주, 두 개의 유나이티드

2009년 7월 2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6만 4천 석 매진 관중이 몰렸다. 프리미어리그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아시아 투어 중 한 경기, FC서울과의 친선전이었다. 가디언은 이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 안 홈플러스에서 한 중년 여성이 맨유 신용카드로 장을 보는 장면을 소개하며 한국에 약 600만 명의 '레드 데빌스'가 있다고 전했다.

같은 주, 7월 18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유나이티드'가 부천에 왔다. 2005년 말콤 글레이저의 인수에 반발한 팬들이 만든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였다. 당시 잉글랜드 7부 리그에 있던 이 구단은 한국 3부 리그(K3) 소속의 부천FC 1995와 친선전을 치렀다. 가디언은 이 대비를 기사 제목에서부터 "또 다른 유나이티드가 아시아를 겨냥하다"라고 짚었다.

● 7.24 서울월드컵경기장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FC서울 64,000석 매진

○ 7.18 부천종합운동장 :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vs 부천FC 1995 25,000명 (가디언 사전 기사 기준)

FC 유나이티드 측 대변인 줄리언 스펜서는 두 방문의 성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의 설명을 정리하면, 대부분의 구단이 '브랜드 홍보'를 위해 극동을 찾아 수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FC 유나이티드는 팬 중심 구단 운영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선수들에게 해외 원정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2. 두 도시, 하나의 상실

FC 유나이티드가 태어난 배경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전통적 팬층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정서가 있었다. 부천의 경우는 정서가 아니라 냉혹한 사실이었다. 2006년 2월, 당시 1부 리그 소속이던 SK 부천FC 선수단이 새 시즌을 준비하던 어느 날 아침, 팬들은 자신들의 구단이 하루아침에 제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SK그룹의 석유 계열사 SK에너지가 2002 월드컵 경기장 중 유일하게 비어 있던 제주 구장을 채우기 위해 연고지를 300마일 남쪽으로 옮긴 것이다.

가디언 원문 인용

당시 부천1995의 무급 마케팅 매니저였던 "신동민" 씨는 이 순간을 이렇게 증언했다. "우리는 가족에게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상실에 대한 응답으로 부천 팬들은 직접 자신들의 구단을 만들었고, 그 구단은 3부 리그인 K3에서 다시 출발했다. 창단 재원의 상당 부분은 SK텔레콤과의 스폰서십 계약에서 나왔는데,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단순한 미담을 벗어나 훨씬 복잡한 결을 갖는다.

3. 원래는 윔블던이었다

가디언 기사가 드러낸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이 친선전이 애초부터 각본처럼 성사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SK텔레콤은 "꿈을 이뤄드립니다"는 취지의 전국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 중이었고, 사람들은 회사에 원하는 것을 요청할 수 있었다. 유명 보이그룹을 하루 담임교사로 초청해달라던 여고생들의 소원은 거절당했고, 대신 채택된 것이 부천의 제안이었다.

부천 측이 처음 원했던 상대는 FC 유나이티드가 아니라 같은 팬 소유 구단인 AFC 윔블던이었다. 런던의 이 구단이 일정상 여유가 없어지자, 신동민 씨의 표현을 빌리면 "조건에 맞는 남은 구단은 하나뿐"이었고, 그렇게 FC 유나이티드에 연락이 닿았다. FC 유나이티드의 앤디 월시 단장은 서울 사전 기자회견에서, 이 소식을 AFC 윔블던 쪽에서 처음 전해 들었을 때 장난인 줄 알았다고 밝혔다. 상무이사 아이버 헬러가 평소 짓궂은 농담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다른 경로로 재차 확인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일화가 중요한 이유는, 완벽하게 설계된 서사보다 우연과 행정적 착오, 두 번째 선택지였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야기를 더 진짜처럼 만들기 때문이다.

명품의 창업 설화도 대개 그렇다 —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얻어걸린 재료나 실패한 시도에서 출발한 경우가 더 많다.

4. 2009년 7월 18일, 부천종합운동장

경기는 장맛비 속에 열렸다. 부천FC 명단에는 공교롭게도 국가대표 박지성과 동명이인인 선수, 그리고 카카라는 이름의 선수도 있어 가디언은 이를 두고 "종이 위에서는 볼만하다"고 표현했다. 코리아중앙데일리에 따르면 실제 관중은 2만 5천 명에 달했고, 부천FC는 주장 박문기의 헤더 골로 앞서간 뒤 후반 막판 두 골을 추가해 3-0으로 승리했다.

경기 후 두 팀 선수들은 그라운드 중앙에서 유니폼을 교환하고 헤르메스 서포터들이 있는 서쪽 스탠드로 걸어가 함께 박수를 받았다. 1,000명의 헤르메스 회원 중 약 300명은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응원을 이어갔다.

"이곳의 서포터들과 분위기는 정말 특별하다. 짧지만, 부천FC의 역사는 감동적이다."

— 김태륭, 부천FC 미드필더 (코리아중앙데일리 인터뷰 취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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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엑스포츠뉴스]

5. 악마가 돈을 준대도

이 이야기에서 가장 복잡한 결은 마지막에 있다. 이 친선전의 비용을 댄 곳은 다름 아닌 SK텔레콤 — 3년 전 부천 구단을 제주로 옮긴 SK에너지와 같은 SK그룹 소속이지만 별개의 계열사였다. 신동민 씨는 이 아이러니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인정했다.

그는 2006년 사건을 일으킨 것은 SK에너지였고 SK텔레콤은 다른 회사이며, 최근에는 풀뿌리 축구를 지원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느 리그에서 뛰든 응원할 자신들의 구단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설령 악마가 돈을 준다 해도 받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이 발언은 미담으로 포장하지 않은, 생존을 위한 팬 구단 운영의 현실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6. 복제할 수 없는 것

명품 브랜드는 로고와 재료를 카피할 수 있어도, 창업자가 실제로 겪은 시간과 결단은 복제할 수 없다. 같은 논리가 팬 소유 구단에도 적용된다. 자본을 투입해 하루아침에 '서포터 문화'를 표방하는 구단을 만들 수는 있지만, 상실과 재건이라는 실제 서사, 우연히 두 번째로 선택받았다는 사실, 자신들을 버린 그룹의 다른 계열사에게서 돈을 받아야 했던 아이러니까지 — 이 모든 결은 각본으로 쓸 수 없는 것들이다.

가디언코리아중앙데일리라는 서로 다른 두 매체가 같은 주에 이 만남을 독립적으로 취재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날의 영상이 15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부천 서포터 커뮤니티에 원본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서사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관찰되고, 스스로도 기록해온 사건이었음을 뒷받침한다.

헤리티지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상실을 겪고, 그것을 스스로 복구하려 한 사람들의 시간 — 그 안의 우연과 모순까지 포함한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헤리티지가 된다. 부천의 이야기가 갖는 가치는 거기에 있다.

기업구단 돈으로 살 수 없고, 다시 쓸 수도 없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현재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는 2026~2027 시즌을 7부리그 노던 프리미어리그 소속)

[참고 자료]

● The Guardian · Sportblog

John Duerden, "Now 'the other United' target Asia," 2009.7.16

FC 유나이티드 방한 및 신동민 인터뷰 원문

●Korea JoongAng Daily

Jason Kim, "Supporter-owned teams meet for historic match," 2009.7.20

경기 당일 현장 취재, 관중 수·선수 인터뷰

●RedsGo 부천FC 팬커뮤니티 · 미디어

2009.07.18 월드풋볼 드림매치 부천FC1995 vs FC유맨 전반전 (원본 영상)

이희천 업로드 · 당시 CATV 중계 영상 아카이브

ORIGINAL1995 · 부천 서포터즈 아카이브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