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울트라스" 문화의 제안자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 Prologue — 1997, 도쿄에서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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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내 상위 중간 : 이병국님]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프로축구장은 여전히 관변 응원의 잔재인 앰프 소리와 야구장식 박수, 단순한 선수 이름 연호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거치며 일본의 '울트라 니폰(Ultra Nippon)'식 서포팅이 아시아 팬덤의 표준 모델로 급속히 수용되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점, 한 청년이 관찰자의 위치에서 행동가로 전환하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1997년 한일전 (도쿄)

붉은악마의 일원으로 도쿄 국립경기장 스탠드에 직접 들어선 이병국은 일본 울트라 니폰의 절제된 박수 패턴과 규격화된 멜로디를 목격했습니다. 체계적이고 정렬된 응원 방식이었으나, 그에게는 하나의 결정적인 결핍이 포착되었습니다.

"경기 전체를 뒤흔드는 야성적 에너지의 부재."

그것은 기술적 차이라기보다는 철학적 차이였습니다. 일본식 울트라 니폰은 "관객의 협력"에 머물렀고, 그가 갈구한 것은 "스탠드의 주인"으로서의 주체성이었습니다.

부천으로 돌아온 그가 던진 질문은 이후 K리그 울트라스 문화의 방향을 결정할 만큼 명확했습니다.

"일본식 모방을 넘어, 경기장을 집어삼킬 진짜 강성 울트라스를 만들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1. 일본식 응원의 경계를 넘어 '울트라스'의 원류로

1-1. 철학적 전환의 필요성

이병국이 추구한 것은 단순한 응원 퍼포먼스의 스타일 전환이 아닌, "응원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이었습니다. 그의 이상은 다음 세 가지 요소에 집약되었습니다.

① 시간적 연속성 (Temporal Continuity)

  • 경기 흐름에 따라 끊기는 울트라 니폰식 박수 패턴에서 벗어남

  • 경기 시작부터 종료까지 90분간 끊임없는 찬트(Chanting)와 열정의 유지

  • 경기의 리듬을 주도하는 능동적 응원의 실현

② 주체성의 회복 (Recovery of Agency)

  • 관객이 아닌 "경기장의 주인"으로서의 정체성 재구성

  • 경기장 분위기 형성의 주도권을 관중석이 확보

  • 팀과 경기를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것에서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역할 전환

③ 압도적 현존감 (Overwhelming Presence)

  • 시각·청각·촉각을 모두 동원하는 다층적 감각 자극

  • 관중석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로 응집되는 경험

  • 상대 팀 선수들과 관중까지 압도할 수 있는 물리적·심리적 영향력

1-2. 해외 사례 연구와 문화적 토대 구축

1997년 도쿄 경험 이후, 이병국은 집요한 자료 수집과 분석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구체적 방법론을 모색했습니다.

인터넷이 본격 보급되지 않았던 1990년대 후반의 제한적 정보 환경 속에서, 그는 다각적 경로를 통해 국제적 울트라스 문화를 탐구했습니다.

  • 해외 축구 서적 및 아카이브 자료: 이탈리아 세리에A의 울트라스, 동유럽(특히 구 유고슬라비아) 울트라스 그룹들의 조직 체계

  • VHS 비디오테이프: 유럽 클럽 경기 녹화본과 울트라스 문화 다큐멘터리

  • PC통신 네트워크: 축구 동호회 포럼을 통한 국제적 정보 교류

  • 해외 여행 중 직관: 경기장에서 현지 울트라스 문화의 생생한 경험

특히 남미 '바라 브라바(Barra Brava)' 문화—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등에서 발전한 격렬하고 주체적인 응원 방식—은 그가 추구하는 "강성 울트라스"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팬을 넘어 경기장의 주체로서 팀과 리그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는 존재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병국이 추구한 울트라스의 정수였습니다.

2. 부천에 울트라스(Ultras)를 이식하다.

2-1. 다층적 응원 문화의 구축

이병국이 헤르메스에 도입한 울트라스 문화는 "단순한 노래와 함성을 넘어선 통합적 경험 설계"였습니다.

청각적 정체성: 응원가의 도입 (1998~1999)

먼저 이병국은 헤르메스의 공식 응원가로서 다음 두 곡을 제안하고 정착시켰습니다.

첫째, 「Ale Forza Bucheon」. 트위스티드 시스터(Twisted Sister)의 〈We're Not Gonna Take It〉을 헤르메스의 색채로 재해석한 이 응원가는 강렬한 록의 에너지를 담아냈고, 경기장 전체를 울리는 거대 떼창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둘째, 「You'll Never Walk Alone」(YNWA). 리버풀 FC의 상징곡으로 도입된 이 곡은 팬과 팀이 함께하는 동고동락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영국 스탠드의 울트라스 정신을 부천에 이식하려는 선택이었으며, 이후 부천 헤르메스의 "정신적 국가(Anthem)"로 기능하게 됩니다.

시각적 임팩트: 게이트기와 플래카드 혁명

이병국이 가장 혁신적으로 도입한 것은 "경기장을 미디엄(Medium)으로 삼는 시각 전략"이었습니다. 서포팅석에 새로운 이미지인 게이트기(Gate Banner)와 거대한 "울트라 부천" 메인 걸개(ULTRAS PUCHON)를 도입하여, 팬들이 스탠드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강렬한 정체성을 각인시켰습니다. 대형 플래카드와 걸개는 관중석 전면을 적색으로 물들이며, 원정팀 선수들과 관중들이 부천의 존재감을 시각적으로 체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는 헤르메스 정체성을 한눈에 드러내는 핵심 이미지로, 매 경기 경기장을 장악했습니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들은 유럽 울트라스 경기장(이탈리아의 로마, 밀란, 영국의 리버풀 등)의 웅장함을 K리그 스탠드에 처음 구현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2-2. 「Ultras Puchon」의 정체성 확립과 내부 설득

이병국이 주도적으로 결성·확대시킨 'Ultras Puchon'은 초기에는 헤르메스 내부의 제한된 의견에 불과했으나, 이후 부천 헤르메스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정체성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헤르메스 초창기에는 여러 명의 핵심 콜리더들이 함께 서포팅을 이끌고 있었고, 이병국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울트라스 문화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깊이 있는 이론적 토대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설득력 있는 제시였습니다.

이병국은 단순히 "울트라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왜 일본식 울트라 니폰이 부족한지", "경기장을 집어삼킬 강성 울트라스의 철학이 무엇인지", "유럽과 남미의 울트라스 사례가 어떻게 다른지"를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도쿄에서 직접 경험한 일본 스탠드의 한계, 수집한 해외 자료를 통한 구체적 사례, 해외 축구를 보며 느낀 현장 경험—이 모든 것들이 다른 헤르메스 멤버들과 울트라스들을 울트라스 철학으로 설득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병국의 영향력은 그의 조직적 위치보다는 문화적 전도자로서의 신뢰성과 설득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울트라스 비전은 헤르메스의 여러 인원들과 울트라스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철학으로 제시되었고, 이것이 "부천 전체를 하나의 울트라스 정체성으로 응집"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도쿄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었습니다.

"우리는 구경꾼이 아닌 팀의 영혼이자, 경기장의 주인이며, K리그 스탠드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 선언은 헤르메스의 모든 응원 활동—찬트, 플래카드, 게이트기, 심지어 침묵의 순간까지—을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으로 작동했습니다. 이것은 '서포터즈'라는 개념을 '울트라스'라는 철학적 정체성으로 승화시킨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단순한 구단 응원 조직이 아닌, 경기장을 주도하고 팀의 운명과 함께하는 주체적 존재로서의 '울트라스'라는 개념의 도입이 부천 헤르메스의 진정한 혁신이었습니다.

3. 현지 경험과 철학의 완성

울트라스 개념을 부천에 본격적으로 이식한 이후, 이병국은 어학연수를 명목으로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이 선택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습니다.

3-1. 영국 스탠드에서의 최종 검증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등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중심지에서 직접 스탠드에 선 이병국은, 1997년 도쿄에서 시작된 질문에 대한 최종 답을 얻었습니다.

그가 목격한 것은:

  • 경기의 모든 순간이 스탠드의 에너지로 규정되는 경험

  • YNWA로 상징되는 팬과 팀의 불가분의 관계

  • 90분 내내 쉬지 않는 함성과 찬트의 일관성

이는 1997년 도쿄에서 느낀 "결핍"과 정확히 대조되었습니다. 영국 현지에서 경험한 울트라스 문화는 그의 이상을 완전히 정당화했습니다.

3-2. 귀국 후의 문화적 전수

영국에서 돌아온 이병국이 전달한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현지 경험에 근거한 생생한 증언과 철학적 확신이었습니다.

헤르메스의 울트라스들에게 전해진 그의 이야기—영국 스탠드의 열기, YNWA의 의미, 팬 주체성의 실제 작동 방식—은 부천의 응원 문화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설득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영국에서 경험한 현장의 열기를 멤버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부천이 추구해야 할 울트라스 정체성의 구체적 모습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헤르메스의 응원 철학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4. 외부의 평가와 K리그 전역으로의 확산

4-1. K리그 타 울트라스 및 축구계의 평가

부천 헤르메스가 2000년대 초반 보여준 울트라스 문화는 "K리그 전체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가장 위압적이고 독창적인 골대 뒤"

상대 팀 선수들과 울트라스들의 회고에 따르면, 부천의 원정 관중석은 K리그에서 다음과 같이 인식되었습니다.

  • 물리적 위압감: 게이트기와 플래카드로 가득한 관중석이 주는 시각적 압박감

  • 청각적 주도권: 경기 흐름을 지배하는 끊임없는 찬트와 함성

  • 심리적 영향력: 홈 팀에 대한 강력한 정신적 지원을 넘어, 원정팀에 대한 뚜렷한 심리 전술로 작동

"한국 울트라스 문화의 선구자"

2000년대 초반 K리그 전역에 태동한 여러 울트라스 그룹들의 성장 과정에서, 부천 헤르메스의 영향은 명백했습니다.

이들 울트라스 그룹들은 부천이 개척한 "게이트기 연출, 조직적 찬트 구조, 울트라스 소모임 체계, 대형 플래카드 운영, 응원가 통일화, 시각적 임팩트 중심의 응원 설계" 등을 광범위하게 벤치마킹했습니다. 부천 헤르메스의 방식은 단순한 "한 구단의 응원 문화"를 넘어 K리그 울트라스의 표준 모델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축구계 평론가들과 기자들 사이에서도, "부천 헤르메스의 등장이 K리그 스탠드의 표준을 바꾼 사건"이라는 평가가 일반화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응원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K리그 전체의 팬 문화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4-2. 울트라스 문화의 표준화와 K리그의 변모

1990년대 후반 "일본식 박수 응원의 K리그"는 2000년대 중반 "유럽·남미식 울트라스 스탠드의 K리그"로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어냈습니다.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는 이병국과 초창기 헤르메스 울트라스들의 철학적 문제 제기와 실험적 실행이 있었습니다.

Epilogue. 스탠드에 새겨진 유산


직장 생활로의 전환과 함께, 현재 이병국은 삼성전자 해외 주재원으로 브라질에서 근무 중입니다. K리그 스탠드에서의 직접적인 현장 활동은 세월에 따라 줄어들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욱 깊이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7년 도쿄의 스탠드에서 시작된 그의 고민—"일본식 모방을 넘어 강성 울트라스를 만들려면?"—은 이미 K리그의 거대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팀의 이름이 바뀌고, 시련을 겪고, 다시 일어서는 모든 순간 속에서도 부천종합운동장 골대 뒤에서 울려 퍼지는 전통의 멜로디와, 매년 손수 그려지는 거대한 메인 걸개 속에는 — 30년 전 스탠드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한 청년의 철학이 여전히 뜨겁게 숨 쉬고 있습니다.

[서포터 열전] 시리즈 · 부천 헤르메스 (Her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