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는 사람에서 팀을 만드는 사람, "김도영"

Prologue —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

경기가 없는 날의 그는 좀처럼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피터팬이었다. 후배들 사이를 누비며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누군가 정색을 하면 오히려 더 짓궂게 웃어 보이는 남자. 그런데 킥오프 휘슬이 울리고 첫 응원가의 전주가 시작되는 순간 — 그 얼굴은 마치 스위치가 꺼지듯 사라진다. 대신 그 자리에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누구보다 뜨거운 눈빛을 가진 한 사람이 선다.

이 두 얼굴 사이의 틈, 그 좁고 깊은 틈 속에 30년의 시간이 웅크리고 있다. 빼앗기고, 부서지고, 그럼에도 끝내 지워지지 않은 시간. 그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사업가도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팀을 위해 목소리 하나를 보태고 싶었던, 스탠드에 서 있던 수많은 얼굴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목소리는 문화가 되었고, 문화는 훗날 폐허 속에서 팀 하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그 이름, 김도영이다.

28123.jpg28117.jpg

1. 문화의 뿌리 — 전화동아리방에서 시작된 네트워크

이야기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시작되지 않는다. 시작은 늦은 밤, 다이얼 톤이 울리던 작은 방 한 칸이었다.

1990년대 중반의 PC통신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아니었다. 시간 단위로 매겨지는 통신 요금, 집에 컴퓨터조차 없는 학생의 처지. 접속 버튼 하나를 누르는 일에도 계산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열아홉, 스무 살의 김도영에게 그 벽은 실제로 두꺼웠다. 하지만 그는 벽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대신, 벽 옆에 난 작은 문을 찾아냈다. 다이얼 하나로 접속하는 음성 서비스, '전화동아리방(ARS)'이었다.

1996년 10월, 부천 유공은 국내 프로축구 구단 최초로 팬들에게 구단과 선수 소식을 전하는 동아리전화 서비스를 열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안내 음성, 그 뒤를 잇는 정적. 그 정적 속에서 서비스 번호와 비밀번호를 누르며 접속을 이어가던 사람이 김도영이었다. 한국통신 단말기를 빌리고, 때로는 남의 아이디까지 빌려가며 그는 매일 밤 그 작은 음성의 방을 지켰다.

가진 것이 없어도 사람은 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전화선 저편에서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그 작은 방 안에서 하나씩 얼굴을 익혀갔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그 밤들이, 훗날 스탠드 전체를 뒤흔드는 함성의 첫 씨앗이 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95년

28129.png

2. 문화의 건축가 — 응원을 '역사'로 축적하다

2-1. 스탠드의 아키텍처

부천의 스탠드에서 김도영과 서포터즈 헤르메스(Hermes)는 관람객이 아니었다. 그들은 텅 빈 콘크리트 계단 위에, 아무도 걸어본 적 없는 길을 한 걸음씩 새겨 넣은 건축가였다.

그들이 만들고 부른 노래들은, 부르는 순간 곧 스탠드의 언어가 되었다.

  • 「!!!부천」(1997)

  • 「나의 부천 영원히」(1997) — 붉은악마 "필승코리아" 음원 사용(강모씨과의 공동 제안)

  • 「Attack Bucheon」/「Enjoy Bucheon」(1998)

  • 「올레 올레 올~레 오 부천」(1998, 김도영 제안)

  • 「Reds Soul Bucheon」(2001)/「부천 LaLaLaLa」(2005) 등

한편 비슷한 시기, 헤르메스 내부에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었다. 이병국이 1997년 도쿄 원정에서 목격한 일본식 응원의 한계를 문제 삼으며 '울트라스(Ultras)'라는 철학적 개념을 제안했고, 이는 「Ale Forza Bucheon」·YNWA 같은 응원가와 게이트기·대형 플래카드라는 시각적 장치로 이어졌다. 김도영이 조직과 기록, 실행의 축을 담당했다면, 이병국은 그 정체성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이론적으로 제시한 쪽이었다. 두 흐름은 대립이 아니라 병행이었고, 이 둘이 만나며 헤르메스는 '노래하는 응원단'에서 '스탠드의 주체'로 도약할 수 있었다.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이병국이 제안한 'ULTRAS' 정체성은 김도영의 손을 거쳐 실제 대형 걸개와 레터링으로 구현되었다. 82미터짜리 대형 걸개의 밑그림을 손수 그렸고, 밤을 새워 천을 자르고 페인트를 칠했다. ULTRAS BUCHEON이라는 여덟 글자, 그 레터링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몇 번이고 붓을 다시 들었을 그 손끝에서, 개념은 비로소 눈에 보이는 색깔이 되었다. 스탠드는 더는 관중석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러 사람의 손과 생각이 모여 세운 하나의 무대였다.

2-2. K리그의 지형을 바꾼 '최초'의 기록들

김도영과 헤르메스가 남긴 발자국은 곧 한국 응원 문화의 이정표가 되었다.

  • 초대형 유니폼 통천(Tifo) 및 82m급 메인 걸개: 당대 최대 길이의 걸개는 관람석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바꿔놓았다.

    28140.jpg28120.jpg
  • 국내 클럽 최초 공식 응원가 CD 발매: 부르는 순간 흩어져 사라질 함성을, 손에 쥘 수 있는 기록으로 남겼다.

    28114.jpg
  • 콜리더(Caller) 전승 시스템: 한 세대의 목소리가 다음 세대로 끊기지 않게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 지금도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 등번호 12번 영구결번(1998년): 부천 SK가 헤르메스에게 바친 이 결번은,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팬을 '클럽의 12번째 선수'로 인정한 사건이었다.

그날, 관중석의 한 사람이 마침내 팀의 일부로 새겨졌다. 그 자리에 김도영이 있었다.

3. 검은 옷의 저항 — 연고 이전과 '부천축구 장례식'

2006년 2월 2일. 겨울이 채 끝나지 않은 그 하루, 부천 SK의 제주 연고 이전이 발표됐다. 부천시도 몰랐고, 팬들도 몰랐다. 10년 넘게 스탠드를 지켜온 역사가, 단 하루 만에 종잇조각처럼 구겨져 버렸다.

전화를 받은 김도영은, 아마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래 주저앉아 있지 않았다. 당시 헤르메스 회장이었던 그는 서포터들과 함께 검은 옷을 꺼내 입고 거리로 나섰다. 서울 서린동 SK 본사 앞, 대한축구협회 앞을 메운 검은 물결. 그들의 손엔 영정 사진이 들려 있었다. 살아있는 팀의 영정을 든다는 것 — 그것은 사랑하던 것을 잃는 슬픔을,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 짊어지겠다는 선언이었다. 당시 헤르메스의 원로 한 사람은 이미 끝났다는 망언을 하고 갈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고, 모두가 다시는 부천에 축구팀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이 없었던 시기에 그는 투쟁을 결정한 것이다.

27820.jpg

이 저항은 부천의 경계를 넘어섰다. 2006년 3월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앙골라전. 붉은악마와 K리그 서포터즈 연합은 검은 옷을 입고, 전반전 초반 내내 응원 대신 침묵을 택했다. 몇만 명이 모인 경기장에 잠시 내려앉은 그 정적은, 한 지역 클럽의 비극이 이제는 대한민국 축구팬 전체가 함께 짊어지는 아픔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부천 시민의 호응이 없어서 떠난다고? 그것은 팬들과 지역 사회에 대한 비열한 망발이다."

언론 앞에서 던진 이 한마디는 분노가 아니었다. "팀은 빼앗길지언정, 우리의 축구와 정통성은 죽지 않는다"는 다짐이었고, 폐허 위에서도 다시 걷겠다는, 아주 조용하고 단단한 결심이었다.

28118.webp

4. 폐허 위에 세운 기적 — 정통성을 지켜낸 헤르메스의 중심

팀이 사라지면 서포터즈도 함께 사라진다 — 그것이 오랜 관례였다. 헤르메스는 그 공식을 깨뜨렸다. 도리어 방향의 전환을 했다.

팀이 사라지면 팀을 만들자.

2006년 3월, 그는 서포터즈 원로들을 설득하고 '부천FC 창단시민모임'이 발족했다. 처음엔 내셔널리그를 바라봤지만, 2007년 K3리그가 열리며 방향을 틀었다. 2007년 11월 부천시와 연고지 협약을 맺고, 그해 12월 1일 마침내 '부천FC 1995'의 창단식이 열렸다. 그 모든 여정의 한가운데, 김도영은 당시 헤르메스 회장으로서 흔들리는 조직의 중심을 붙잡고 있었다. 팀도, 연고지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에서, 서포터즈의 조직을 그는 다시 처음부터 걸었다.

그 정통성을 세상에 증명한 상징적인 하루가 2008년 12월 26일, '부천FC-OB 자선경기'였다. 부천실내체육관 야외구장. 이을용, 윤정환, 김한윤, 남기일, 곽경근 — 한때 부천 SK의 이름을 달고 뛰었던 옛 선수 30여 명이 다시 그라운드에 섰다. 팀은 사라졌어도 부천의 맥은 끊기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증명하러 온 자리였다. 유니폼도, 팀 이름도 없이 서포터 몇몇이 지켜낸 자리에, 한때 그 유니폼을 입었던 사람들이 돌아와 준 것이었다.

조이뉴스24 (Joynews24)
부천FC, 옛 부천SK 영웅들과 자선 경기 개최
부천FC 1995가 이을용, 윤정환 등 과거 부천SK의 영웅들과 함께 뜻깊은 송년 자선경기를 개최합니다.
https://m.joynews24.com/v/382372

K3리그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 K리그2를 거쳐 승격을 향해 달리는 부천FC 1995. 그 모든 여정의 맨 밑바닥에는, 화려함 대신 스탠드의 야성을 끝까지 지킨 김도영과 헤르메스의 이야기가 뿌리처럼 박혀 있다.

Epilogue — 다시, 스탠드의 한 사람으로

전화선 너머의 목소리를 모으던 청년, 스탠드의 문화를 설계한 건축가, 검은 옷을 입고 연고 이전에 맞선 투사, 그리고 사라진 팀을 시민의 손으로 다시 세운 주역.

30년의 궤적은 결국 짧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응원 → 문화 → 저항 → 창단"

수많은 이름을 뒤로하고, 그는 오늘도 다시 스탠드의 한 구석으로 돌아온다. 지난 서포터즈를 이끌던 회장도 아니고, 창단 주역도 아니다. 그저 땀 냄새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목이 터져라 부천을 외치는 '한 명의 서포터'로.

그를 아는 이들은 말한다. 회의 석상에서는 날카로운 원칙론자였지만, 경기가 끝난 뒤 계단에 걸터앉아 후배들과 농담을 나누던 모습은 영락없는 개구쟁이 소년이었다고. 어쩌면 그 철들지 않은 마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기에, 그는 삼십 년을 지치지 않고 스탠드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기업은 팀을 버릴 수 있어도, 팬은 축구를 버리지 않는다. 스탠드에 단 한 명의 목소리가 남아있는 한, 우리의 클럽은 결코 죽지 않는다."

항상 얘기하던 그의 이 철학은 구호로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부천FC 1995의 붉은 역사와 헤르메스의 함성 속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28122.jpg

[서포터 열전] 시리즈 · 부천 헤르메스 (Hermes) · 부천 서포터즈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