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링크 : 타지지자의 "원문 게시글 바로가기" 1995년 유공 코끼리 '월간축구 6월호' 광고 자료 게시글 — m.blog.naver.com/sonpd1985 — 반박 대상이 되는 원 게시글 ↗

먼저 위 원문 게시글 중 현 시점에서 구하기 어려운 희귀 자료를 발굴해주신 타지지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다만 단편적인 자료 해석만으로 헤르메스 초창기 역사의 본질이 왜곡되거나 또 다른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당시의 객관적 사실관계와 타임라인을 정리하여 기록합니다. 1995년의 축구 관람 문화와 K리그 현황을 30년 뒤의 잣대로 평가하면 자연스레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서, 이 글은 그러한 오독을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타임라인으로 보는 '선제적 제안'과 '구단의 수용' (1995년 5월 ~ 6월)

원 게시글이 제시한 <월간축구> 1995년 6월호(5월 25일경 발간)의 '응원리더 모집 및 응원도구 지급' 광고는 헤르메스 역사 아카이브 내에서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사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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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지지자가 제시한 의문의 "월간축구 1995년6월호]

다만 아카이브팀에서 보유한 <월간축구> 1995년 2월호 지면에는 이 '응원리더 모집' 문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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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의 연간회원 모집 광고 자체는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게재되고 있었지만, '응원리더'를 모집한다는 문구는 오직 6월호에서만, 즉 신동일 님 등 하이텔 축구동 회원들이 구단에 제안서를 전달한(5월 20일 전후) 직후부터 새롭게 추가된 것입니다. 이 시점상의 일치는 해당 문구가 원래부터 기획되어 있던 상시성 광고가 아니라, 팬들의 제안에 대한 구단의 '반응'으로 급히 삽입된 문구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은, 당시에는 '서포터즈'라는 용어와 개념 자체가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이텔 축구동호회원들이 제안한 것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명백히 '서포터즈 문화'였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이를 지칭할 마땅한 언어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구단은 팬들이 제안한 개념을 '응원리더'라는, 당시로서는 가장 근접한 기존 표현을 빌려 광고 문구로 옮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응원리더 모집'은 구단이 독자적인 응원 조직을 새로 만들려는 기획이 아니라, 하이텔 축구동이 제안한 활동을 구단의 언어로 번역해 지면에 실은 결과에 가깝습니다.

또한 이 광고가 실제로 별도의 응원리더를 선발하거나 그들을 중심으로 한 응원을 조직한 적이 없다는 점은 원래 서술대로 유지됩니다. 이는 구단이 애초에 하이텔 축구동과 별개로 자체 조직을 운영할 의도가 없었고, 오히려 이 광고를 통해 모집되는 인원을 하이텔 축구동의 활동에 합류·흡수시키려는 목적, 즉 하이텔 축구동의 인원 모집을 측면 지원하려는 성격에 가까웠음을 시사합니다.

2. 타 구단·타 종목 사례와의 비교: 유공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었다

이 시기 팬클럽에 대한 구단 차원의 지원·홍보는 유공 코끼리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K리그 마케팅 과도기 전반에서 나타난 공통된 흐름이었습니다.

  • 수원 삼성 (그랑블루, 1995년 12월 창단)

수원 삼성이 창단되면서 팬클럽에 대한 훨씬 더 적극적인 물적 지원을 약속했고, 이에 따라 당시 유공 응원단('동대문파')의 젊은 회원층 상당수가 수원삼성 팬클럽('사이버 윙즈')으로 이탈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모기업 삼성전자를 낀 수원삼성 쪽이 오히려 유공보다 더 적극적으로 팬클럽 지원을 마케팅에 활용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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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화천마 / LG치타스

일화천마는 이미 구단차원에서 박종환 감독 개인 팬클럽 중심의 조직화된 응원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LG치타스 역시 응원단장·치어걸 중심의 '동원형' 응원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상위권 인기 구단들은 자체적인 응원 조직을 이미 운영 중이었고, 유공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아무 체계가 없었기에 하이텔 축구동호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팀이었다는 배경이 있습니다.

  • 인천 유나이티드 (2003년 창단)

위키백과에 따르면 인천 유나이티드는 "시민구단으로 출발한 인천이 빠른 시간 안에 명문구단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서포터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창단과 함께 구단이 직접 서포터즈 클럽을 공개 모집했습니다.

28303.jpg기호일보 - 인천 유나이티드 서포터즈 공모

(링크 - 해당 기사)

이는 '팬이 먼저 제안 → 구단이 뒤따라 수용'했던 유공/헤르메스 사례와 정반대로, '구단이 먼저 기획 → 팬을 모집'한 방식입니다.

이런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990년대~2000년대 K리그 구단들이 팬클럽·응원단에 물자·지면을 지원하고 심지어 직접 모집까지 나선 것은 유공만의 예외적 '어용화' 시도가 아니라 당시 프로축구 마케팅 전반의 보편적 흐름이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 흐름 속에서도 유공/헤르메스 계열은 자발적 제안이 먼저였다는 순서가 타 사례와 뚜렷이 구분되는 지점이며, 일부 구단(인천 등)은 유공보다 훨씬 더 '구단 주도형'으로 서포터즈가 출발했다는 점도 함께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형태의 광고·기사는 1995년 유공 사례에 국한된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었습니다. 구단이 지면이나 매체를 통해 응원단·팬클럽 모집을 알리는 관행은 1996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K리그 여러 구단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각 구단이 신생 스포츠 마케팅 시장에서 팬 조직을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던 시대적 흐름의 연장선이었을 뿐, 유공/헤르메스만이 예외적으로 구단 주도 하에 창설되었다는 근거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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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이러한 '구단 주도 모집 → 자발적 응원 조직으로의 자연 흡수' 방식은 비단 축구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프로야구를 포함한 국내 프로스포츠 마케팅 전반에서, 구단이 연간회원권(시즌권) 가입자를 모집하고 이들을 응원 활동으로 유도한 뒤, 이미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응원 조직에 자연스럽게 흡수시키는 방식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유공의 '응원리더 모집' 광고 역시 이와 같은 시대적 관행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구단이 하이텔 축구동과는 별개의 어용 조직을 창설하려 한 사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3. '유튜브 스탐 영상' 속 깃발·꽃가루 장면을 1995년 5월 유공응원단과 동일선상에 놓은 것에 대하여

원 게시글에서 근거로 제시한 유튜브 '스탐' 영상 속 관중석 깃발과 꽃가루 장면은, 1995년 11월 포항 아톰즈–일화 천마 챔피언결정전 당시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포항 홈구장에서 열린 2차전(11월 11일)일 가능성이 가장 유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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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처 : 타지지자 블로그]

영상 속 장면은 포항 아톰즈 측 관중석에서 나온 것으로 유공 응원단과는 무관하며, 시점상으로도 5월 유공 응원단의 제안·실행 이후 반 년 가까이 지난 11월 시즌 최종전(챔피언결정전)의 모습입니다. 이 시점상의 차이는 오히려 원 게시글의 주장과는 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만약 해당 장면이 1995년 5월 이전의 것이었다면 '유공보다 앞선 응원 문화'라는 시기상의 우위를 주장할 근거가 될 수 있었겠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5월 이후 반 년이 지난 시점의 자료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무렵은 하이텔 축구동호회원들의 응원 문화가 유공을 넘어 타 구단 원정 응원(포항 원정 포함)으로 조금씩 파생·확산되기 시작한 시점과 겹칩니다.

즉, 11월 챔피언결정전 영상은 유공 응원단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5월 유공 응원단에서 비롯된 응원 문화가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다른 구단 현장까지 파생되어 가던 흐름 속의 한 장면일 가능성이 더 높은 자료입니다.

서로 다른 구단·시점의 자료를 근거 없이 같은 선상에 놓고 '유공 이전부터 존재했던 응원 문화'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타임라인상 성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두 사건을 잘못 연결한 것 자체가 원 게시글의 논리적 비약에 해당합니다.

4. 초기 구단과의 관계: '동원'이 아닌 '상호 존중과 자주권'

헤르메스의 초창기 역사는 구단에 적대적이거나 일방적으로 종속된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팬들이 구단 마케팅과 운영에 직접 목소리를 냈던 선진적인 협력 관계였습니다.

  • 주기적인 업무 협의와 주도권 — 당시 서포터즈 대표단은 구단과 거의 매달 공식 미팅을 가졌고, 주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구단 프런트와 일상적인 업무 통화를 주고받았습니다. 구단의 유니폼 디자인부터 각종 홍보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서포터즈와의 사전 협의를 거쳐 결정될 정도로 구단은 팬들의 전문성과 자발성을 존중했습니다.

  • 자주성의 증거 — 응원 찬트 수립 — 팬들은 "제 돈을 지불하고 입장한 주체로서, 구단의 기업명(SK/유공)을 응원 찬트에 직접 넣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내부 운영 협의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구단이 일방적으로 만든 어용 응원단이었다면 기업명을 찬트에서 빼는 결정을 구단이 수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서포터즈가 초기부터 완전한 사상적 자주권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명백한 사례입니다.

이후 성적 슬럼프, 선수 이적, 구단의 투자 소극화 문제가 발생하면서 구단에 대한 비판적 견제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으며, 이는 건강한 서포터즈로 진화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5. 결론

1990년대 스포츠 마케팅 과도기에 구단이 팬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해 응원석을 내어주고 용품 지원을 고지했던 행위는 유공만의 예외가 아니라, 수원삼성·인천 유나이티드는 물론 당시 프로야구를 포함한 여러 종목·구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흐름이었습니다. 특히 '응원리더 모집' 문구가 2월호에는 없다가 5월 제안 이후인 6월호에만 등장한 점, 그리고 이 표현이 당시 부재했던 '서포터즈' 개념을 구단의 언어로 옮긴 결과였을 가능성, 나아가 이것이 하이텔 축구동과 별개의 조직이 아니라 그 인원 모집을 지원하려는 성격이었다는 점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부천 응원의 역사는 구단이 기획하고 팬을 동원한 사례가 아니라, 팬의 자발적 제안이 먼저였고 구단이 뒤따라 이를(당대의 언어로) 수용·지원했던 사례로 재확인됩니다.

[참고 출처]

  • 부천 서포터 헤르메스 공식 아카이브, 「우리의 역사」 (bucheonfc.net/bfchistory1)

  • 스포츠조선, 1995년 5월 20일자 (하이텔 축구동 제안 관련 보도)

  • 위키백과, 「부천 FC 1995」 항목

  • 수원일보, 「서포터즈 원조… 축구 응원 열정, 지역 사랑으로 키운다」

  • 위키백과, 「인천 유나이티드 FC」 항목 (ko.wikipedia.org)

  • 1995년 포항 아톰즈–일화 천마 챔피언결정전 경기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