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자료]

● 1차적 관점 글 링크 : 하이텔 축구동호회 원정응원 기록 (한태일 님) — fmkorea.com

○ 3차적 관점 글 링크 : "헤르메스가 우리나라 첫 서포터스인데?" — fmkorea.com

1995년 동대문운동장.

한쪽 스탠드에 낯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뿔피리를 불었다. 깃발을 흔들었다.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유공 코끼리를 응원했다.

그 장면을 만든 사람과,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의 기억은 같았을까.

같지 않다.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은 자신이 서 있던 자리만큼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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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K FC 아카이브)

1. 당사자에게 1995년은 "창단"이 아니었다

하이텔 축구동호회 사람들에게 그해의 목적은 유공이 아니었다. 일본 J리그가 승승장구하고, 2002 월드컵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던 시절 — 그들이 마주한 것은 위기감이었다. 야구식 앰프와 치어걸을 몰아내고, 팬 스스로 응원문화를 만들자는 문제의식.

유공을 고른 건 애정이 아니라 전략이었다. 서울 세 팀 중 가장 백지에 가까운 구단. 치어걸도, 고정 팬층도 없어 새로운 실험을 방해할 것이 없는 팀.

그러니 그들의 자기인식은 이렇다.

"우리는 유공만을 위한 서포터즈로 시작하지 않았다. 우리는 새로운 응원문화를 만들었고, 그 실험대가 유공이었을 뿐이다."

이것은 조직 내부의 동기다 — 신빙성 있는 1차 사료다. 편지, 신문, 당시 게시판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2. 관중석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사람에게는 내부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본 것은 단순했다. 유공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였다. 뿔피리를 불었다. 깃발을 들었다. 유공을 응원했다.

그에게 이들은 '축구문화 개혁을 꿈꾼 하이텔 회원들'이기 전에, 그저 유공을 응원하는 무리였다. 훗날 "그게 지금의 헤르메스 아니냐"고 기억하는 것 — 이것도 거짓이 아니다. 다만 그가 기억하는 것은 동기가 아니라 행위다.

두 기억은 서로 다른 층위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가 옳고 하나가 틀린 게 아니다.

3. 문제는 "서포터즈"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다

논쟁의 뿌리는 사실 여기 있다.

서포터즈를 "특정 구단에 공식적으로 귀속된 팬 조직"으로 정의하면, 1995년의 활동은 설명이 더 필요해진다. 반대로 "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조직적으로 응원을 수행한 집단"으로 정의하면, 1995년 동대문은 매우 중요한 초기 사례가 된다.

당시 자료에는 '응원단'과 '서포터'라는 말 자체가 혼용되었다는 회고가 남아 있다. 오늘날 정착된 개념을, 아직 개념조차 없던 시절로 그대로 소급 적용할 때는 — 그래서 조심스러워야 한다.

4. 명칭과 실체는 서로 다른 시계로 움직인다

동호회가 있었다고 치자. 처음엔 그냥 모여 함께 뛰었다. 몇 년 뒤에야 이름을 정했다. 그럼 이름을 정하기 전엔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당연히 아니다.

1995년의 자발적 응원과 1997년 'HERMES'라는 이름의 확정은 서로 경쟁하는 두 개의 기원이 아니다. 하나의 형성 과정 안에 놓인 서로 다른 단계다.

1995 — 자발적 응원의 시작

1996 — 활동의 지속과 조직화

1997 — 이름과 정체성의 확립

이 셋을 대립시키는 순간, 역사는 산산이 갈라진다.

5. 편향은 어디서 오는가

사람은 자신이 겪은 것, 자신이 속한 조직, 자신이 믿고 싶은 기준을 중심에 놓고 과거를 재구성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자신이 최초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때, 사람은 그 사실을 부정하는 대신 프레임을 바꾼다. "그건 우리가 아니라 다른 팀이었다"는 식으로 — 최초의 자리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슬며시 옮겨 놓는다.

같은 시대를 살고도, 서로 다른 팀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6. 그래서, 무엇을 인정할 것인가

질문을 바꿔야 한다.

"1995년에 유공 서포터즈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 이 이분법을 버리고,

"1995년 동대문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응원했으며, 그 활동이 이후 어떤 조직과 인적 연속성으로 이어졌는가"

를 물어야 한다.

이 질문 안에서는 모든 것이 설명된다. 하이텔의 문화개혁 의지도, 유공을 향한 실제 응원도, 1996년 이후의 지속도, 1997년 헤르메스라는 이름의 탄생도. 그리고 무엇보다 — 1995년과 1997년을 서로 싸우게 만들 필요가 없다.

7. 역사는 기억의 승부가 아니라, 남은 것으로 판단한다

뿔피리 소리를 들었던 사람에게 그것은 생생한 하나의 기억이다. 그 소리를 만든 사람에게 그것은 실험이었다. 그리고 훗날 이를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그것은 신문과 편지와 게시판 기록을 겹쳐 읽어야 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이 셋은 싸울 이유가 없다. 오히려 겹쳐질 때만 1995년은 완전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남의 기억이 아니다. 자신의 기억 하나를 역사 전체라고 착각하는 일이다.

1995년 동대문의 뿔피리 소리는 "유공 팬클럽이 처음 생긴 날"이라는 한 문장으로 끝날 사건이 아니었다. 관중이 수동적인 관람자에서 능동적인 응원의 주체로 건너가기 시작한, 하나의 문이었다.

그 문을 누가 먼저 열었는가를 다투기 전에 — 우리는 먼저 그 문이 어떻게 열렸는지를 물어야 한다.